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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유전병 치료의 문턱을 과연 넘어선 것일까? 싯다르타 무케르지의〈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지난번 어버이날에 들은 얘기다. 어머니 친구는 젊어서 잘사는 집 외아들에게 시집갔다. 손이 귀한 집이었다. 시부모는 스무 살도 안 된 아들을 서둘러 장가보냈다. 그 아주머니는 아들딸 둘씩 넷을 낳았다. 달콤했던 결혼생활이 남편 나이 20대 후반에 무너졌다. 남편이 조현병(정신분열증)에 걸렸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의태 교수에 따르면 조현병은 20~30대에 주로 발병한다. 잘생기고 다정하던 남편이 어느 날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견디지 못한 시집 식구들은 그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이후 젊은 부인은 혼자 살았다.

비극은 남편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남편이 성인이 되어 발병한 걸 본 아주머니는 네 자녀를 걱정해야 했다. 조현병은 유전병은 아니나 유전적 경향이 있다. 아들들은 괜찮은데 딸들은 피하지 못했다. 딸 하나는 죽었고 다른 딸은 폐인처럼 지냈다. 아주머니는 수십 년 동안 요양시설에 있는 남편을 찾지 않았다. 2대에 걸친 기나긴 고통으로 감정이 메말랐다. 어머니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자네 그러면 죽을 때 후회하네.” 그 말을 듣고 아주머니는 시설에 있는 남편을 찾아갔다. 그 남편, 아내를 알아보지 못했다.

유전병에 대한 기존 관념 바꾼 빅터 매큐직

책_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유전병 사례는 주변에 넘쳐흐른다. 살면서 주위에서 수도 없이 보고 들었다. 도대체 인간 유전자는 왜 그리 불안정한가?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의 저자 싯다르타 무케르지 역시 집안에 조현병 내력이 있다. 큰아버지들이 정신분열병을 앓았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도 스트레스가 컸다. 언제 발병할지 모르니까. 무케르지는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로 한국에 알려졌고 2011년  암을 다룬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의대 교수다.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잘 썼다. 이 책은 그레고르 멘델(1822~1884)의 1865년 유전법칙의 발견부터 유전학 150년사를 훑는다. 나는 특히 글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유전병 치료에 도전하는 유전학자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인류유전학과 1990년에서 2003년까지 실행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집중해서 보았다.

무케르지가 소개해서 알게 된 인물이 빅터 매큐직(1921~2008)이다. 그는 의학유전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포털사이트를 찾아봤지만 자료가 별로 없다. 그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내과의 병아리 의사 시절부터 인간 유전병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알려진 유전질환은 혈우병, 낫 모양(겸상)의 적혈구 등 불과 몇 가지였다. 그가 파고들어 가보니 유전병은 생각보다 더 넓고 기이했다. 목에 물갈퀴가 있거나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아이도 있었다. 인간이 물에서 뭍으로 올라온 지 3억 6500만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물갈퀴와 비린내라니. 매큐직은 걸어 다니는 유전질환 백과사전이 됐다.

매큐직은 단일 유전자 유발 질환에 이어 여러 유전자가 만드는 증후군 조사에 나섰다. 예를 들어 다운증후군은 21번 염색체를 하나 더 지니고 있다. 이 여분의 염색체가 여러 신체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다유전자 증후군은 유전체에 흩어져 있는 다수의 유전자가 일으키는 경우다. 당뇨병, 관상동맥병, 고혈압, 조현병, 불임, 비만 등 매우 흔한 만성질환이 그에 속한다.

매큐직은 유전병에 대한 기존 관념을 바꿨다. 그는 돌연변이가 병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실체가 아니라 통계적 실체라는 걸 깨달았다. 돌연변이체의 반대말은 ‘정상 개체’가 아니고 ‘야생형’이다. 야생 초파리처럼 인간에게도 유전적 변이가 풍부하다. 우리 모두는 돌연변이체다.

유전병에 대한 연구가 인간의 삶에 미친 큰 변화 중 하나는 태아 유전질환 검사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이 검사가 확산됐다. 터너증후군, 클라인펠터증후군, 테이색스증후군, 고셰병 등 거의 100가지에 이르는 염색체 장애와, 23가지 대사 장애를 산전 유전자 검사로 확인했다. 이후 다운증후군 환자의 수는 격감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1971년에서 1977년 사이에 20~40% 줄었다.

한국은 한참 늦다. 1990년대 초 아내가 아이들을 출산했다. 태아가 유전질환이 있는지 여부 검사를 당시 산부인과 병원에서 추천하지 않은 걸로 아내는 기억한다. 기껏 초음파 검사로 아이가 건강한지만 확인했다. “주먹 쥐고 있어요”, “심장 잘 뜁니다”는 식이었다. 다행히 요즘은 태아의 유전질환 검사가 보편화했다. 보건당국이 검사할 수 있는 유전질환을 정해놓았다.

왓슨, 벤터, 그리고 콜린스

1986년 5월 28일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의 바닷가 도시 콜드스프링하버. 색색의 아름다운 목조건물들이 잔잔한 만 주변에 자리 잡은 콜드 스프링하버연구소에서 오래 기억될 심포지엄이 열렸다. 당시 연구소 소장은 제임스 왓슨. 그는 1953년 DNA가 이중나선구조라는 걸 밝혀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고, 3년 뒤 1956년 하버드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1968년부터는 저명한 민간 연구소인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 소장을 겸임했다.

당대 최고의 생화학자 유전학자들이 참석한 심포지엄 제목은 ‘호모 사피엔스의 분자생물학’. 콜드스프링하버에 온 연구자들 마음속엔 인간 유전체 연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인간 유전체 서열을 전부 읽어내는 게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1980년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월터 길버트(하버드대 교수)와 폴 버그(스탠퍼드대)는 인간게놈프로젝트(HGP·Human Genome Project) 세션 좌장을 맡았다. DNA 서열 분석의 선구인 월터 길버트는 냅킨 가장자리에 인간게놈프로젝트의 비용과 인원이 얼마나 들지 계산해봤다. 인간 DNA는 염기쌍 30억 개로 만들어져 있다. 길버트는 전체 서열을 분석하려면 총인원 5만 명에 염기쌍 1개당 1달러로 쳐서 약 30억 달러가 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길버트의 수’가 제시되자 유전체 계획은 손에 잡힐 듯이 현실감을 갖게 됐다. 나중에 그 수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것으로 드러났다.

왓슨에게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둘째 아들 루퍼스 왓슨이 조현병 환자였다. 루퍼스는 심포지엄 전날 뉴욕 주 화이트 플레인스의 한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 왓슨은 조현병이 유전적 원인에서 온다고 믿었고, 인간 유전체를 알아야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왓슨은 1989년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인간 유전체 계획의 책임자로 뽑혔다.

크레이그 벤터는 미 국립보건원에서 일하던 거의 무명의 신경생물학자였다. 벤터는 외골수에다가 욱하는 호전적인 성격의 반항아였다. 벤터의 유전체 서열 분석 전략은 급진적인 단순화였다. ‘유전자 파편’ 전략이라고 불렸고, 나중에는 ‘샷건(산탄총)’ 서열 분석이라는 기술로 진화했다. 벤터는 유전체를 샷건으로 쏘듯이 조각내고 그 조각들을 끼워 맞춰서 조각 그림 퍼즐을 맞추려고 했다. 그는 1992년 6월 국립보건원을 떠나 민간 연구소 타이거(TIGR)를 차렸다. 정부기관 내의 소모적인 언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벤터와 다른 접근법을 채택한 건 프랜시스 콜린스였다. 그는 미시건 대학의 인류유전학자다. 콜린스는 프로젝트 주관 기관과 충돌한 뒤 물러난 왓슨의 뒤를 이어 1993년 인간유전체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됐다.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유전체 계획이 콜린스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를 만들어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거의 선천적으로 그 과제에 안성맞춤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유능한 행정가이자 일류 과학자인 콜린스는 세심하고 신중하고 외교 수완이 있었다. “크레이그 벤터의 작은 요트가 맞바람에 마구 뒤흔들리고 있을 때 콜린스는 거의 흔들림 없이 대양을 가로지르는 여객선에 타고 있었다.” 벤터가 지름길로 바로 치고 나갔다면, 콜린스는 인간 유전체 전체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분석해내겠다는 접근법을 밀고 나갔다.

2000년 6월 26일 미국 대통령 관저인 백악관에서 크레이그 벤터, 프랜시스 콜린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인간 유전체의 1차 조사가 끝났다고 발표했다. 벤터와 콜린스, 두 라이벌이 한자리에 선 건 빌 클린턴의 중재 때문이었다. 백악관은 두 집단 중 일방의 승리보다는 공동 우승을 희망했다. 두 사람은 〈사이언스〉지에 나란히 논문을 싣는 데 동의했다. 벤터는 백악관에서 스피치를 통해 여자 3명과 남자 2명 등 모두 5명의 유전 암호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벤터의 스토리는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에, 프랜시스 콜린스의 이야기는 〈생명의 언어〉에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유전병 치료를 위한 중대한 문턱을 과연 넘어선 것인가.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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