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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담넘어 음악듣기] 디즈니와 음악, 그리고 실리 심포니

디즈니(Disney)의 전성시대다. 201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디즈니 스튜디오의 위상은 전에 없이 거대해졌다. 지난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흥행 순위를 보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도리를 찾아서’, ‘주토피아’가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1~3위를 차지했고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와 ‘정글북’이 그 뒤를 이었다. 모두 디즈니와 10여 년 전부터 자회사로 편입된 마블(Marvel), 픽사(Pixar), 루카스필름(Lucasfilm)의 작품이다. 2017년 5월 현재 세계 흥행 1위는 ‘미녀와 야수’ 영화판, 그리고 최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가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디즈니 애니의 핵심,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

디즈니의 작품들에는 대체로 탁월한 음악이 그 바탕에 자리한다. 텐씨씨(10cc)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블루 스위드(Blue Swede), 잭슨 파이브(Jackson 5) 등의 음악이 끊임없이 흘렀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즐거워했다면 그 속편에 더한 열광을 보내게 될 것이다. ‘가오갤 2’에는 이엘오(ELO), 샘 쿡(Sam Cooke),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나 캣 스티븐스(Cat Stevens) 등 반가운 옛 명곡들이 한아름 등장한다. 몇 년 전 세계적 신드롬을 불러왔던 ‘겨울왕국’이 전한 매혹은 지난겨울 선보인 ‘모아나’를 가득 채운 멋진 음악으로 다시 한 번 재현됐다. 이야기와 프로덕션의 힘, 그에 더한 음악과의 시너지야말로 오랜 역사를 지닌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21세기 이후 성공을 거둔 디즈니 작품의 공통점이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라는 사실이다. 옛 캐릭터 또는 이야기의 부활과 리메이크, 옛 음악의 사용, 세련되게 풀어낸 고전적 스타일 등은 현재 디즈니의 주요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4년이라는 엄청난 역사를 지닌 디즈니에게 고전과 과거는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10년 ‘라푼젤’부터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작품의 프로덕션 로고로 사용되는 영상은 1928년에 제작된 ‘증기선 윌리’ 중 타륜을 잡고 휘파람을 부는 미키 마우스의 모습이다. 2006년 CGI로 새롭게 만들어진 디즈니 픽처스 인트로 로고에는 1940년 영화 ‘피노키오’의 주제가 ‘별에 소원을 빈다면(When You Wish Upon A Star)’과 별,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신데렐라의 성, 피터팬의 해적선, 메리 포핀스의 구름 등이 등장한다. 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마법사의 제자’, ‘말레피센트’, ‘신데렐라’, ‘정글북’, ‘피트와 드래곤’, ‘미녀와 야수’ 등 영화로 새롭게 제작돼 성공을 거둔 2010년대 리메이크 작품들과 더불어 풍요로웠던 과거에 기반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스튜디오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고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특징짓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증기선 윌리’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나는 ‘음악과 동작의 완벽한 일치성’은 후에 ‘미키 마우징(Mickey Mousing)’이라 불리며 초기 디즈니의 전형적 특징으로 자리한다. 음악과 병행하는 캐릭터의 동작, 즉 리듬과 선율에 따른 등장인물의 움직임은 오페라와 춤, 연극의 형태가 혼합된 뮤지컬의 요소와 함께 첫 번째 전성기를 수놓았고, 1937년 첫 장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부터 2016년 56번째 장편 ‘모아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또한 여러 작품이 보편적으로 잘 알려진 동화와 전설, 이야기 등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독일의 그림 형제와 프랑스의 샤를 페로, 덴마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정리한 유명한 동화, 전래동화와 전설, 신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 사이에 대중에게 인기를 누려온 소설 등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세계의 중심을 이뤘다.

그 시작점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혁신성과 독창성, 상업적 감각과 예술성의 기막힌 조화를 펼쳐 보인, 동시에 신문 만화와 단행본, 아동용 도서 등 파생 상품으로 ‘미디어 프랜차이즈(media franchise)’ 개념을 처음 도입한 단편 시리즈 ‘실리 심포니(Silly Symphony)’가 자리한다. 대중을 사로잡을 새로운 시리즈를 고민하던 월트 디즈니는 음악과 기발하게 어우러지는 작품을 생각했고 1929년 8월, 직접 연출과 애니메이션을 맡은 6분짜리 흑백 단편 ‘해골 춤’을 탄생시켰다. 으스스한 묘지에서 그리그의 ‘트롤의 행진’을 포함한 칼 스톨링의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는 네 해골의 우스꽝스럽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중세 ‘죽음의 무도’의 이미지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얻었고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디즈니는 10년간 75편의 ‘실리 심포니’를 제작했다.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대표적 성과 ‘아기 돼지 삼형제’

‘실리 심포니’ 시리즈는 미키 마우징을 전면에 내세운 참신한 뮤지컬의 형식을 기본으로 한다. 더불어 주로 친숙한 옛이야기나 동화, 전설 등을 각색한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를 따르는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고유한 특징이 되는 모든 요소가 이 시리즈를 통해 확고하게 정형화된 형태를 갖췄다. 무엇보다 ‘실리 심포니’는 이야기의 전개와 캐릭터의 구성 및 디자인, 배치는 물론 제작 과정에서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온갖 실험과 기술적 시도를 한껏 펼친 거대한 장(場)이었다. 다단식 촬영대에 설치된 카메라(multiplane camera)를 활용한 깊이 있는 원근감과 입체적 효과, 지극히 사실적이고 역동적이며 부드러운 움직임 등 이 시리즈에서 체득한 다채로운 경험과 혁신적인 기술적 성과는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후 디즈니 왕국이 탄탄한 기반으로 성장하는 여러 걸작의 뿌리를 이뤘다. 특히 아름답고 풍부하며 화려한 색채로 가득한 ‘총천연색 영화’의 한 방식인 ‘테크니컬러(Technicolor)’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월트 디즈니는 계약을 통해 당시 새롭게 개발돼 이전의 2색을 대체한 3색 테크니컬러를 적극 사용했다. 그 결과물이 최초로 풀 컬러 3색 테크니컬러 방식을 도입한 1932년에 개봉한 ‘꽃과 나무’다.

시리즈의 여러 작품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또 내용이나 표현, 특수효과, 음악 등 여러 면에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꽃과 나무’, ‘아기 돼지 삼형제’(1933), ‘토끼와 거북이’(1935), ‘세 마리의 어미 잃은 아기 고양이’(1935), ‘시골 쥐'(1936), ‘낡은 방앗간’(1937), 그리고 컬러 리메이크 작으로는 ‘미운 오리 새끼’(1939) 등 7편이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시리즈의 연출을 맡은 이들은 월트 디즈니 자신을 비롯해 어브 아이웍스(Ub Iwerks) 외에 버트 길렛(Burt Gillett), 윌프레드 잭슨(Wilfred Jackson), 데이비드 핸드(David Hand) 등이다. 각 작품의 음악은 ‘증기선 윌리’에서 친근한 음악을 들려준 버트 루이스(Bert Lewis)와 이후 ‘백설공주’와 ‘덤보’, ‘밤비’ 등에 참여하는 프랭크 처칠(Frank Churchill), ‘피노키오’로 아카데미 주제가와 스코어 상을 수상한 리 할린(Leigh Harline), 그리고 앨버트 헤이 맬로트(Albert Hay Malotte) 등이 주로 담당했다.

디즈니_아기 돼지 삼형제

▶ 실리 심포니 시리즈의 여러 작품 중 시대를 초월해 가장 사랑받은 작품은 1933년 5월 개봉된 〈아기 돼지 삼형제〉다. 영국의 유명한 민담을 바탕으로 버트 길레트가 연출한 이 작품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중 시대를 초월해 사랑을 받은 작품은 1933년 5월 개봉된 ‘아기 돼지 삼형제’다. 영국의 유명한 민담을 바탕으로 버트 길렛이 연출한 이 작품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당시 2만 2000달러(현재 화폐가치로 약 41만 달러=5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25만 달러(약 470만 달러=55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여기엔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성과로 손꼽히는 여러 부분이 포함돼 있다. 탁월한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음악과 동작의 조화는 물론 무엇보다 커다란 사랑을 받은 히트곡 ‘Who’s Afraid Of The Big Bad Wolf?’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랭크 처칠이 작곡하고 재즈 스탠더드라 불리며 ‘Willow Weep For Me’로 유명한 앤 로넬(Ann Ronell)이 노랫말을 쓴 이 낙천적인 곡은 대공황기 미국인에게 힘을 주었고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디즈니를 대표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은 2007년 미국 의회도서관 내 국립영화보존위원회의 영구 보존작으로 선정, ‘국립영화등기부(National Film Registry)’에 그 이름을 올렸다.


김경진 |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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