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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담넘어 음악듣기] 아련함과 그리움의 목소리, 김광석

최근 김광석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석연치 않은 그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의혹, 아직까지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을 담은 작품이다. 안타까움 가득한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오며 다시 김광석의 노래를 쭉 들었다. 가을 밤을 채우는 서늘한 바람에 실려온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스하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20년이 훌쩍 넘은, 하지만 늘 동시대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 같은 그의 노래, 그의 음악이 지니는 힘의 정체는 뭘까?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

그의 자유는 내 설렘이 되고 그의 흥은 나를 들뜨게 한다.

무모할 정도의 열정과 소박한 웃음, 청각이 아닌 가슴으로 직접 파고드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 한없이 애잔하고 쓸쓸하고 서정적이며 때로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노랫말과 맑고 아름다운 선율. 그는 지극히 순수하며 슬프도록 눈부신 존재감을 지닌 노래꾼이었다. 그의 음악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 외로움과 허전함을 달래고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는 이들, 순수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지닌 이들의 감성을 휘어잡는 힘을 지닌다. 그 안에서 그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 되고 내 슬픔은 그의 노래자락을 타고 오며 목소리의 가녀린 떨림에 나의 불안함은 숨을 죽인다. 그가 동경한 낭만적 세계는 나의 희망이 되고 낯설기만 한 그의 자유는 내 설렘이 되고 그의 흥은 나를 들뜨게 한다.

수많은 이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고 깊은 감동을 선사해준 이는 너무도 일찍 세상을 등져버렸지만, 그의 음악은 영구한 생명력을 얻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불리고 들려오는 김광석의 노래들은 여전히, 가혹한 젊음과 일그러진 욕망, 잔인한 세월과 현실의 무게 따위로 인해 나약해진 마음에 힘이 되며 상처입고 힘겨워하는 영혼을 치유해준다. 저마다 고유한 향기와 색깔을 지닌 6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에는 높은 음악적 평가와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들이 고루 포진돼 있다. 물론 김광석은 몇몇 히트곡만으로 평가되는 가수가 아니다. 그는 늘 음악과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거칠거나 정돈된 철학적 사색을 담아낸 노래를 통해 공연장의 무대 위에서 대중과 호흡해왔다. 정체성 확립 이전의 포크 팝 앨범들인 ‘김광석 1’(1989), ‘김광석 2nd’(1991)와 한국 모던 포크의 적통(嫡統)으로서 자신의 확고한 색채를 뚜렷이 갖춘 ‘세 번째 노래 모음’(1992)과 ‘다시 부르기 I’(1993), 그리고 완벽한 음악적 성과를 표출한 ‘네 번째’(1994), ‘다시 부르기 II’(1995)로 완성된 김광석 음악세계는 말 그대로 우리 대중음악계의 소중한 유산으로 찬연히 빛나고 있다.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그의 여러 히트곡들은 다른 사람의 곡이었다. 하지만 ‘남의 노래를 부르는 포크 가수’라는 묘한 정체성을 통해 오히려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매혹을 보여줬다. 특히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한동준의 ‘사랑했지만’과 세 번째 앨범의 ‘나의 노래’에서 타인의 꿈과 이상과 철학, 경험치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그의 타고난 재능을 엿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의 일원이었던 한동헌의 곡 ‘나의 노래’는 김광석의 목소리를 통해 빛을 보게 됐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이라는 노랫말과 역동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곱씹어보자. 이건 그야말로 김광석 자신의 희망 찬 독백이 아니던가. 민중가요를 불렀지만 그는 사회 참여적 운동가가 아니었고 서정시인에 가까운, 순수한 문학적·음악적 감성을 지닌 예술가이자 자유인이었다. 뛰어난 감수성과 깊은 사색의 습관이 있었기에, 그리고 비범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는 시와 노래를 골라내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했다.

물론 그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의 자질을 충분히 갖췄다. 김창기와 유준열의 탁월한 작곡 역량에 가려 있던 동물원 시절 그저 ‘노래 잘하는 보컬리스트’였던 그는 솔로 데뷔작에 자신이 쓴 6곡을 수록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의 뛰어난 작곡 역량과 시적 감수성이 확연히 드러난 건 세 번째 앨범에 이르러서다. 극도의 서정성을 담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나른한 오후’는 그의 비범한 재능을 잘 드러내준다. 소박하고 나직하고 조용하지만 잊을 수 없는 선율을 지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보자.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 어제보다 커진 내 방 안에 /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라니, 이토록 순결한 감성이 실린 쓸쓸한 연가에 뿌려질 눈물의 양은 무한할 것만 같다. 맑디맑은 피아노 연주에 실려 가볍게 떨려오는 김광석의 목소리가 온몸의 감각을 촉촉히 적셔주는 ‘나른한 오후’는 또 어떤가. ‘아 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 아 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이라는 노랫말이 고스란히 가슴에 녹아든다. 어떤 날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담긴 관조와 체념의 정서를 능가하는 이 아련하고 신비로운 곡을 듣고 있으면 아린 외로움이 극대화되고 나는 저 고운 하늘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강승원의 곡 ‘서른 즈음에’가 수록된, 섬세함과 서정성, 역동성, 기분 좋은 활기를 고루 표출한 최고의 앨범 ‘네 번째’에서 그는 ‘일어나’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명곡을 남겼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힘을 내고 희망을 가지라는 멋진 포크 록 ‘일어나’에서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있는 걸 /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버리지’라고 노래한다. 경쾌한 퍼커션 리듬과 상쾌하기 그지없는 멜로디가 깊은 감흥을 선사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들을수록 기분 좋은 설렘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라는 노랫말에는 포크 음악의 전형적인 낭만성이 충실히 반영돼 있다.

‘남의 노래를 부르는 포크 가수’라는 묘한 정체성

두 장의 ‘다시 부르기’ 시리즈를 통해 그가 재해석한 우리 음악계의 보석과도 같은 곡들, 먼지 쌓인 채 희미하게 잊혀지던 포크 음악은 김광석 덕분에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애초 전인권이 노래했던 김현성의 곡 ‘이등병의 편지’는 오리지널 버전의 투박하고 거친 감성과 확연히 차별되는 애잔한 슬픔 가득한 목소리와 구슬픈 하모니카 연주로 수많은 남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흔히 ‘김광석 음악의 집대성’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되는 ‘다시 부르기 II’는 그가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뮤지션들에게 바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던 포크 모음집이며 동시에 탄탄하고 깔끔한 편곡과 연주 등 원곡을 능가하는 탁월한 리메이크라는 가치를 지닌 앨범이다.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나 이동원이 불렀던 백창우의 곡 ‘내 사람이여’를 들어보라. 나직하면서 은은하지만 깊고 명쾌한 울림을 지닌, 강렬한 색채와 향이 담긴 김광석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영혼을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을 지닌다. 그야말로 순수함의 결정체와도 같은 그의 노래가 전하는 공명은 온전히 가슴을 채우고 이내 짙은 감흥이 온몸을 기분 좋게 감싸온다.

그렇게 이 아름다운 음악에 나를 맡겨두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시간이 이 순수한 소리에 녹아들면 어느덧 나긋하게 풀어진 내 감성은 명료해진 내 의식과 말끔한 조화를 이루며 짙은 카타르시스가 되어 마음을 씻어준다. 김광석 음악의 매력이란 그런 것이다.


김경진 |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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