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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침팬지 무리 통해 인간의 권력 속성 연구한 프란스 드 발 <침팬지 폴리틱스>

“로이트는 나와 니키의 2 대 1 연합 전선에서 패했다. 침팬지 권력투쟁에서는 동맹이 핵심이다. 어떤 수컷도 장기간 혼자서 지배할 수 없다. 우두머리에게는 동맹이 필요하다. 나는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니키를 받쳐줬다. 니키가 우두머리가 되고, 나는 그의 오른팔이 됐다. 로이트는 강한 것이 약점이었다.”

 

책_침팬지 폴리틱스 

침팬지 예로엔

나는 네덜란드 아른헴의 동물원 내 침팬지 집단의 알파 수컷이었다. 오래전 일이기는 하다. 1976년 말이었으니. 나의 빛나는 치세는 어느 날 끝나고야 말았다. 〈침팬지 폴리틱스〉 저자 프란스 드 발이 ‘72일 전쟁’이라고 이름 붙인 젊은 침팬지의 도전에 나는 패했다. 내가 지배했던 침팬지 집단은 모두 25마리(1981년 기준).

마지막 전투는 종전 8일 전인 64일째 일어났다. 로이트와의 다섯 번째 양자 대결이 있었다. 이날 처음 나는 그놈 공격을 당할 수 없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기울어진 형세를 바꾸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나는 며칠을 끙끙대다가 로이트를 찾아가 굴욕적인 복종의 ‘인사’를 했다. 침팬지는 상위 서열자에게 존경의 표시를 위해 헐떡거리는 소리를 낸다. 처음에 내가 불분명하게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자 이를 무시하던 로이트는 나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권력의 젖을 떼기란 힘들었다. 정상에서 내려온 나는 멍하니 먼 곳을 쳐다보곤 했다. “남자에게 권력은 궁극적인 최음제이며, 거기에 중독성까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때 내 모습은 네덜란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이 쓴 〈내 안의 유인원〉에 잘 써놓았다.

“예로엔은 주변의 사회적 활동에 무관심했고, 몇 주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우리는 예로엔이 아프다고 생각했으나 진찰한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예로엔은 한때 위풍당당했던 거물의 유령에 불과했다. 나는 이렇게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 예로엔의 이미지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권력을 잃은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사라졌다.”

침팬지 로이트

나는 늙은 침팬지 예로엔에 도전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30대여서 힘이 빠져가는 예로엔이 권좌를 내놓지 않으려 해서 애먹었다. 그는 암컷과의 동맹관계를 등에 업고 나에게 70여 일이나 맞섰다. 침팬지 사회의 권력관계가 복잡해서 양자 간의 승부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나는 암컷과 공개적인 짝짓기를 시도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 예로엔은 평소에는 다른 수컷이 암컷과 교미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권력이 무엇인가? 성을 독점하는 게 권력이다. 때문에 나머지 수컷은 숨어서 암컷들과 데이트해야 했다.

예로엔은 내 도발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약세를 보였다. 같은 날 오후 나는 다시 도발했다. 그의 주변을 돌며 자기 과시를 했다. 발로 땅을 쿵쿵 구르고 손바닥으로는 땅바닥을 두드렸다.

이후 나는 예로엔에 대한 사회적 고립에 착수했다. 예로엔은 암컷 침팬지 그룹에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암컷을 내 편으로 돌리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위치로 바꿔놓아야 했다. 집단 내 성인 수컷은 네 마리고, 나머지는 암컷 성체거나 그들과 함께 사는 새끼들이다.

알파 암컷은 마마. 40세가량 된 최연장자로, 여성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모든 걸 이해한다는 눈빛을 가진 그는 이 공동체 안에서 가장 존경받는 침팬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예로엔은 고립되어갔다. 그의 자신감 상실은 눈빛에서 드러났다. 최후 결전에서 내가 승리를 거둔 건 다른 침팬지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예로엔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싸움 결과가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침팬지 집단에서는 사회관계가 싸움 결과를 결정한다. 나는 예로엔을 굴복시킨 뒤 지도자 자리에서 추방하는 걸로 전후 처리를 끝냈다. 그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노회한 야심가’로 재기한 침팬지 예로엔

나는 젊은 침팬지 로이트에 권좌를 내주고 와신상담했다. 2위 수컷 자리마저 유지하지 못했다. 더 젊은 침팬지 니키에 내줬다. 프란스 드 발은 나를 ‘노회한 야심가’라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로이트에 대한 복수를 준비했다. 내 권력을 무너뜨린 놈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나는 새로운 야심가 니키를 동맹자로 끌어들여 권좌 복귀를 획책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상에 오르려고 하는 자가 궁극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죽음이다”(프란스 드 발).

나를 꺾은 로이트는 이 말을 새겼어야 했다. 그는 어리석게도 권력이 얼마나 위태로운 자리인지 몰랐다. 어느 날 로이트는 치명상을 입은 채 아른헴의 침팬지 숙소에서 발견됐다. 온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잘려나가고 없었다. 수의사가 도착해 로이트를 수술실로 데려가 수백 바늘을 꿰맸다. 심지어는 불알까지 뜯어져나갔다. 의사는 수술 도중에 그것이 없어진 걸 알았다. 사육사는 우리 바닥의 짚더미 속에서 고환을 발견했다. 수의사는 “꽉 쥐어짜서 뽑았군요”라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로이트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로이트는 나와 니키의 2 대 1 연합 전선에서 패했다. 침팬지 권력투쟁에서는 동맹이 핵심이다. 어떤 수컷도 장기간 혼자서 지배할 수 없다. 우두머리에게는 동맹이 필요하다. 나는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니키를 받쳐줬다. 니키가 우두머리가 되고, 나는 그의 오른팔이 됐다. 나는 니키와 음모를 꾸몄고, 문제의 그날 밤 행동에 옮겼다. 로이트는 ‘강한 것이 약점’이었다.

인간 프란스 드 발

나는 아른헴의 동물원 내 침팬지 사회 권력변동을 6년 동안 연구해 1982년 〈침팬지 폴리틱스〉를 썼다. 2005년에 발행한 〈내 안의 유인원〉의 ‘권력’ 편은 〈침팬지 폴리틱스〉의 후속 이야기다. 동물행동학자인 내가 본 침팬지의 권력 현상은 놀라웠다. 나는 이 때문에 인간 권력 현상에 대한 최고의 책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어야 했다. 〈침팬지 폴리틱스〉는 반응이 좋았고, CEO들은 권력 속성 이해를 위한 필독서라며 앞다퉈 샀다.

우리는 권력을 악이라고 생각하고 야심을 우스꽝스럽게 여긴다. 아른헴 침팬지를 관찰하면서 나는 권력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 “권력관계는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서열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치는 인간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

나는 인간 사회가 권력 문제를 금기시하는 태도에 의문을 느낀다. 우리는 원한다면 성적 질투심, 남녀 역할, 물질 소유, 지배 욕구와 같은 낡은 성향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잘못이다. 사회과학자나 정치인도 권력을 뜨거운 감자처럼 취급한다. 우리는 그 밑에 숨어 있는 동기를 덮어두길 좋아한다. 봉사하겠다고만 말하지 자신이 권력욕을 추구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침팬지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정직한 정치인”이다. 마키아벨리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까발림으로써 권력의 마법을 풀어야 한다.

서열 없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 그건 잘못이다. 세상은 성적순이다. 그걸 부인하려 하지 마라. 사회 안정을 바란다면, 잘 확립된 질서를 원한다면 서열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쪼는 순서’에 따라 살고 있다. 침팬지나 인간이나 모두 마키아벨리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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