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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인간은 언제쯤 의식의 비밀을 풀 수 있을까? 크리스토퍼 코흐의 <의식>

책_의식

의식의 다른 이름은 몸-마음의 문제다. 이 문제는 2500년도 더 된 오랜 탐구의 역사를 갖고 있다. 뇌라는 생체 기계와 심상이라는 주관적인 느낌 사이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프랜시스 크릭을 여기서 또 만날 줄 몰랐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다. 크릭의 괴팍한 면모를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구조>에서 접한 바 있다. 캐번디시연구소 복도가 떠내려갈 정도로 큰 웃음소리와 넓은 오지랖, 넘치는 아이디어를 주체하지 못했던 사나이. 그런데 30대 중반이 되도록 박사 학위도 따지 못했고.

이 크릭을 <의식> 저자인 크리스토퍼 코흐가 자신의 ‘멘토’, ‘학문적 아버지’라고 한다. 세월이 흐른 것이다. 코흐는 1957년생. 크릭(1916년생)보다 39세나 적다. 코흐는 의식의 생물학 분야에서 최고수 중 한 명.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였고, 지금은 시애틀의 앨런 뇌과학연구소 최고 과학자이다. <의식>은 코흐의 학문적 전기라 할 수 있다. 코흐는 2012년 책에서 크릭에 대한 한없는 존경을 보이며, 크릭이 2004년 죽을 때까지 뇌과학 최고의 고지인 의식 공략을 위해 분투했음을 전한다.

크릭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건 46세인 1962년. 그는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뒤, 분자생물학을 개척하는 데 헌신했다. DNA-> RNA-> 단백질로 이어지는 생명의 신비를 알아내고 이를 푸는 데 압도적인 기여를 했다. <이중나선구조> 속편에 해당하는 이 이야기는 왓슨이 2003년에 쓴 에 나온다. 크릭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되지 못했다. 케임브리지에 새로 생긴 분자생물학연구소(LMB)에서 1976년까지 연구원으로 일하며 분자생물학을 개척했다. 이와 관련해 왓슨은 훗날 케임브리지대학 측의 협량함을 비난했다.

의식 문제는 철학자의 `오래된 장난감이다

크릭이 분자생물학에서 신경생물학으로 관심을 돌린 건 그의 나이 60세가 됐을 때다. “예순 살이 되던 1976년, 그는 구대륙의 케임브리지에서 신대륙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자마자 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라고 코흐는 전한다. 크릭이 이후 십수 년이 지나 크리스토퍼 코흐와 ‘의식’ 연구를 시작했고 첫 논문을 내놓은 건 1990년이다. 그의 나이 74세다.

크릭은 미국에 와서는 샌디에이고의 솔크 생물학연구소에 자리 잡았다. 크릭과 코흐는 16년 넘게 24편의 과학 논문과 에세이를 공동 집필했다. 코흐가 일하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은 LA 인근 패서디나에 있었고, 코흐는 남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인 크릭의 라호야 집에 가서 매달 며칠씩 머물렀다. 크릭은 의식의 연구 관련 대중서로 <놀라운 가설>(1994년)을 썼고, 코흐가 2004년 <의식의 탐구>를 썼을 때 책에 추천사를 써주었다.
코흐는 학문적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총명하고 대성공을 거둔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진정한 천재는 거의 없었다. 프랜시스는 내가 만났던 가장 명확하고 깊은 정신을 지닌 지적 거인이었다.” 기억의 생물학자 에릭 캔들(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도 크릭을 극찬한다. 캔들은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다. “크릭의 엄청난 생물학적 공헌은 그를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든다.”

의식의 다른 이름은 몸-마음의 문제다. 이 문제는 2500년도 더 된 오랜 탐구의 역사를 갖고 있다. 뇌라는 생체 기계와 심상이라는 주관적인 느낌 사이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크릭은 ‘DNA 이중나선구조’ 문제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3년 만에 공략한 바 있다. 그러나 의식은 끝내 공략해내지 못했다. 임종 직전에도 그는 코흐와 같이 쓴 논문 수정 작업을 하며, 뇌의 ‘전장’이라는 조직이 의식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궁금해했다.

의식 문제는 철학자의 오래된 장난감이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부터 17세기 프랑스의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의식을 사유했다. 이들은 몸과 마음이 따로 있다는 이원론을 한결같이 말했다. 현대에 와서는 몸 따로, 영혼 따로 식의 얘기는 더는 주류가 아니다. 하지만 몸에서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의식은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까지도 의식을 연구한다고 하면 노쇠 징표라고 해석했다. 진지하게 파고들 자연과학 영역이 아니었다. 코흐는 “젊은 교수, 특히 아직 종신 재직권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 몸-마음 문제에 정신이 팔린 것은 무분별한 짓이었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뇌가 어떻게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철학자 그룹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바 있다. 기억의 생물학자 에릭 캔들에 따르면, 의식을 과학적으로 살필 수 있느냐에 따라 철학자가 셋으로 나뉜다. 연구 불가하다는 콜린 맥긴(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의식은 뇌의 계산 작업 결과이니 연구할 수 있다는 대니얼 데닛(미국 터프츠대), 그리고 두 사람의 중간 입장인 존 설(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과 토머스 네이글(뉴욕대)이다.

크릭과 코흐는 시각을 주로 공략했다

코흐에 따르면,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의식의 과학이 학문의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란 신기술 등장에 힘입었다. 뇌의 혈류 흐름을 측정, 어떤 뉴런이 활성화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의식의 생물학자들은 의식 공략을 위한 첫걸음으로 의식의 통일성을 매개하는 신경시스템을 파고들었다. 의식의 통일성을 위해 필요한 신경상관물(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 NCC)이 만들어지는 위치를 확인하려고 했다. 여기서 뇌의식 전역(全域) 출현론과 특정 지역 출현 주장이 갈린다. 197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제럴드 에델만은 전역 출현론자이고, 크릭과 코흐는 특정 지역 출현론자다. 크릭과 코흐는 의식의 통일성을 가져오는 뉴런 덩어리를 뇌 속에서 찾아내면 된다고 판단했다.

크릭과 코흐는 시각을 주로 공략했다. 눈의 망막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는 뇌의 1차 시각 영역으로 전달되고, 이후 제2차, 3차, 4차, 5차 시각 영역으로 재전송된다. 그 과정 어디에서 시각의 의식 정보가 출현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마카크원숭이 상대 연구 끝에 1차 시각 영역이 처리하는 정보는 마음이 최종적으로 보는 이미지와 다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의식의 신경상관물은 1차 시각피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2차 시각피질, 3차 시각피질 대상 조사는 쉽지 않았다.

연구가 벽에 부딪힌 코흐는 줄리오 토노니를 만난다. 크릭과 같이 찾아내려고 매달렸던 신경상관물 찾기를 뒷전으로 하고, 토노니와 10여 년간 연구를 협력했다. 토노니는 이탈리아 출신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이고 정보통합이론이란 의식 이론을 만든 대가이다. 코흐는 자신의 생각 변화를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전에는 의식이 복잡한 신경계에서 발생한다는 생각을 지지했다. 먼저 내놨던 <의식의 탐구>를 읽어보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코흐 마음을 새로 사로잡은 의식 이론은 범심론(汎心論)에 가깝다. 범심론은 우주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오래된 생각이다. 코흐는 “의식은 생명체의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속성”이라고 말한다. 의식이 전하처럼 물질의 기본적인 속성이라는 것. 전하는 입자의 속성이며, 입자에서 나타난 창발 현상이 아니다. 코흐는 “더 크고 고도로 연결된 시스템은 더 큰 의식을 지닌다”고 말한다.

토노니의 통합정보이론은 ‘정보’와 ‘통합’을 강조한다. 의식적인 경험은 특별한 정보성을 지니며(‘정보’), 고도로 통합되어 있다(‘통합’)는 주장이다. 통합정보이론은 Φ(파이)라고 하는 의식 측정 단위를 갖고 있다. 0~1의 값을 갖는다.

의식 출현에서 ‘통합’의 중요성은 소뇌와 대뇌 비교에서 확인 가능하다고 한다. 뇌에는 신경세포가 1000억 개가 있고, 이 중 소뇌에 800억 개, 대뇌에 200억 개가 있다. 소뇌가 4배나 뉴런이 많다. 그런데 의식은 뉴런 수가 더 많은 소뇌에 없고, 뉴런이 훨씬 적은 시상-대뇌 피질 연합체에서 나온다. 그 이유는 소뇌는 내부의 모듈들이 제 일을 열심히 할 뿐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탓이라고 토노니는 풀이한다. 대뇌에는 각 지역이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토노니는 이를 기반으로 TMS 뇌파계라는 의식측정계를 만들었다. 정밀하지 않으나 의식이 깨어났으나 몸 안에 의식이 갇혀 있는 소위 락드인(locked-in) 환자를 알아내는 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인간은 과연 언제쯤 의식의 비밀을 풀 수 있을까?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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