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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섬 이야기] 그리움이 고프거든 떠나자

한 사나흘 조용히 머물다 오고 싶은 섬.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머물 곳과 먹거리가 가능한 섬. 오가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고 교통편도 괜찮은 섬. 널리 알려지지 않아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내기 좋은 섬. 그러면서 소소한 이야기가 흐르는 섬. 까다로운 여행자, 집 떠나면 모든 게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고독을 즐기고픈 사람, 그런 사람을 위해 제격인 섬이 ‘고파도’다. 

바다로 나가는 고파도 어민들

바다로 나가는 고파도 어민들

충남 서산시에 속한 고파도는 태안반도와 마주 보는 서산 해협의 끝자락에 있는 섬이다. 배를 타고 그 해협을 거슬러 가야 하는데 파도가 철썩철썩 뱃전을 때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계곡물처럼 급류로 변해 배를 흔들어쌓는다.

서산 팔봉에서 고파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바다가 가로림만이다. 가로림만의 길이는 25km, 너비 2~3km. 가로림만의 갯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이고 유일하게 자연 상태가 잘 보존된 곳이다. 그래서 해양수산부는 천혜의 갯벌을 보유한 이곳을 환경 가치 1위의 바다로 평가했고 해양보호구역으로도 지정했다. 천연기념물 점박이물범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 가로림만에 숨은 섬, 고파도는 전형적인 우리네 옛 어촌 풍경과 양식장으로 이뤄져 있다. 배편은 구도 선착장에서 이용하는데 하루 세 차례 운항한다. 필자는 그날 배편을 놓쳐 소형어선 선외기를 타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정기여객선을 이용했다. 사선으로 15분, 정기 여객선으로 45분 소요된다. 바다가 소용돌이치는 뱃길을 헤쳐나가면 여행객들은 처음엔 다소 놀라지만 이내 섬 여행의 스릴과 해양 생태 여행의 색다른 맛이 무엇인지 실감하고 익숙해진다.

고파도는 가로림만에서 동그랗게 휘어져 들어온 곳에 위치해 호수처럼 잔잔하다. 60여 명의 주민이 사는 고파도는 충남 서산시 팔봉면 22개 마을 중 고파리에 해당하는 마을 단위 섬이다. 고려 때부터 ‘고파도(古波島)’라고 불렀다. ‘고파도성’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높을 고(高)’가 아닌 ‘옛 고(古)’여서 섬 이미지 또한 더욱 고풍스럽다.

고파도와 처음 만나던 날, 바다는 온통 해무로 나그네를 맞았다. 승무를 추는 여인처럼, 군무를 추는 학처럼 안개가 휘날리며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놓으며 나그네 넋을 빼앗았다. 이따금 바람 따라 안개가 밀려간 빈자리에 푸른 섬 한 귀퉁이가 보일 듯 말듯 비밀 커튼 여닫기를 반복했다. 자연이 연출하는 풍경 자체에 압도당했다. 크게 탄성을 내지를 뻔했지만 그러기엔 섬마을이 너무 적막했다.

그렇게 바닷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민박집 이장 댁에 도착했다. 여장을 풀고 이장님의 어머님께서 손수 삶아준 고동을 맛본 후 바다로 나갔다. 고파도는 해안선 길이가 4.5km, 백사장 길이가 500여m에 불과하다. 작아서 더욱 아름다운 섬마을의 호젓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어릴 적 고향 바닷가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콩, 옥수수, 고추, 오이 등 반농반어촌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백사장으로 넘어가는 길에 산딸기, 삐비꽃, 해당화 군락지 등도 아련한 시골길 그대로였다. 꽃향기와 함께 시누대를 울타리로 삼고 있는 둑길을 넘어서자 툭 트인 바다가 열렸다. 우리뿐인 푸른 파도 앞에서 그 무슨 체면치레가 필요하랴.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함성을 내지르며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타기를 했다. 고파도는 밀물 때는 모래 해변에서 해수욕하기가 좋고 썰물 때는 지천으로 깔린 고동과 모시조개, 바지락을 잡을 수 있다. 앞바다에서는 우럭, 노래미, 농어,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

고파도 굴 양식장

고파도 굴 양식장

이윽고 노을이 떨어졌다. 굴 양식장 바지랑대 위로 지는 짙은 노을이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하고, 조등(弔燈) 같아 슬퍼지기도 했다. 그런 허공을 갈매기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그렇게 태안반도 저편에서 노을이 뚝, 떨어졌다. 물론 지는 해는 다시 이 바다에 더욱 새롭게 떠오를 것이지만.

다음 날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떠나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고파도 바닷가에는 굴 껍데기로 가득했다. 굴 생산지로 유명한 섬의 흔적이다. 그 옛날에는 굴을 따서 목선을 타고 나가 다시 지게에 굴을 짊어지고 몇 개 산봉우리를 넘어 서산 오일장에서 돈을 샀었단다.

작은 여객선은 섬사람들과 오래도록 동고동락해왔는데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탓에 물때에 따라 승선하는 사다리 각도와 높이가 달라진다. 객실에는 깨알만 한 글씨로 운임표가 붙어 있었다. 시멘트 1포대 200원, 조개자루 1포대 1000원, 멸치 1포대 500원, 비료 1포대 500원, 젓갈통 1개 1000원, 생선다라 1개 500원, 쌀 20㎏ 1포대 500원, 주민 1인당 2500원. 운임이 참 싸다. 분명한 것은 지불하는 요금이 많을수록 섬사람도 선장도 행복하다는 점이다.

그렇게 잔정이 출렁이는 섬 고파도. 해무처럼 사람과 바다가 더불어 그윽하게 교통하는 섬. 지나간 시간들이 몹시 그립거든, 무작정 고파도로 떠날 일이다. 문득문득 내 핏줄의 고향, 고향 사람들이 그립거든, 그 얼굴을 찾아 떠나듯 고파도로 길 떠나라. 그렇게 휴머니즘이 사무치도록 고프거든 고파도로 떠나라. 


박상건 한국잡지학회장은 <샘이깊은물> 편집부장과 월간 <섬> 발행인을 지냈고 현재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섬과 등대 이야기를 수년간 써왔으며 단행본도 출간했다. 학자이자 여행가, 작가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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