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잃어버렸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 갑자기 족적이 끊겼다. 길이 사라졌다. 조금 전 소박한 농가주택 옆을 지날 때였다. 유난히 개 짖는 소리가 사나웠다. 어릴 때부터 개를 두려워하는 소심함 탓이었을까.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개가 짖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그 소리가 거슬렸다. 조바심을 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겁지겁은 아니더라도 부지런히 개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했다.
거기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안내 지도를 보면 방향은 맞는 것 같은데, 이쪽으로 가면 새로운 주택단지로 막혀 있고, 저쪽은 아예 절벽이다. 이리저리 헤매는데 저만치에 빨간 리본이 보인다. 오호, 그쪽이었군.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으로 리본 가까이 접근한다. 가보니, 이제껏 보아왔던 리본이 아니다. 그저 땅의 경계를 표시해놓은 깃발일 뿐 모양새가 썩 다르다.
제주 올레길처럼 조성했다는 경기 양평의 물소리길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어이가 없어진다. 험준한 백두대간도 아닌 이곳에서 길을 잃었다고생각하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다. 적어도 올레길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다. 바닷길을 걷다가 숲길로 접어들고, 인가 근처를 지나고, 때로는 구불구불한 구절양장의 길을 지날 때도 언제나 올레 표지를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거기서 길은 나를 환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랬는데, 어찌 된 일인가. 혹시 아까 갔던 곳에 다른 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가보지만 여전히 길은 막혀 있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 따위로 길을 만들 게 뭐람. 아예, 불만을 넘어 원망하는마음이 분노의 포도처럼 영글어간다.

아직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서울 여의도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한강대교 쪽에서 경기 일산으로 가던 참이었다. 용산에서 한강대교 옆으로 나가 강변북로를 타야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한강대교를 건넜고, 어찌어찌해서 여의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이었다.
그런데 무슨 조화였을까. 여의도에서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가보면 도로 그 자리였다. 더 주의해서 다시 가봐도 제자리를 맴맴 도는 느낌이었다. 어지러웠다. 몇 번을 그렇게 헤매다가 겨우 올림픽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길치가 되어버린 바보스러운 나 자신을 떠올리며 쓴 조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자동차 여행을 할 때였다. 시카고에서 캐나다 토론토 쪽으로 달리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다. 여행보험을 든 보험회사(AAA)에서 제공받은지도를 보니 틀어진 지점에서 제법 먼 자리에 있었다. 지도를 보며 그 자리에서 새로 길을 찾아가기로 했다. 왜 그런 소신(?)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웬만하면 접어든 길은 물러서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터였다. 동행인은 안전하게 그 지점으로돌아가자고 했지만, 나는 새로 길을 찾는 것을 고집했다.
가보니 지도상에는 표시되기 어려운 작은 개울이 가로막혀 있었다. 자동차는 왜 점프를 하지 못하는지를 탓해도 소용없었다. 결국 또 다른 길을 잡아 겨우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양평 물소리길에서 미국 여행 때의 심정으로 길을 되돌리지 않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길을 되돌렸다. 개 짖는 소리에 허둥대던 민가를 돌아 작은 다리를 건넜다. 그 다리 초입에 물소리길 표지 리본이 있었다. 그 리본이 다리 난간에서 1미터 정도 오른쪽으로 붙어 있어 우회전을 해야 하는 줄 알았던 게 화근이었다.
그 지점에서 다리 쪽이 아닌, 그러니까 오던 길에서 정면 쪽으로 바라보니 저만치 빨간 리본이 보였다. 문제는 그 1미터였다. 어쩌면 다리의 왼쪽 끝에 매달려 있었을 그 리본이 바람에 휩쓸려 1미터 정도 오른쪽으로 이동했으리라. 그걸 보고 나는, 오른쪽 길이구나, 지레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길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오로지 잘못은 위치와 정황을 잘못 판단한 내게 있었다. 예전에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H. D. 소로도 말한 적이 있다. 길을 잃고 나서야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그래서 "숲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은 귀중한 경험인 동시에 놀랍고도 기억할 만한 경험"이라고.
글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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