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구 최고의 우주생물학자 23명과 함께한 서호주 지질 여행기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
언젠가 인류가 개척해야 할 화성 연구를 하려면 서(西)호주에 가야 한다. 서호주 환경이 화성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한 우주생물학자가 서호주 필바라 지역을 찾는 이유가 그것이다.

서울에서 타고 간 비행기는 그러고 보니 모두 동(東)호주로 갔다. 시드니, 브리즈번. 두세 번 다녀왔다. 직장 일이었다.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녀와서 쓴 기사가 변변치 않았던 모양이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호주도 동해안 이미지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골드 코스트, 수도 캔버라, 제임스 쿡 선장이 배가 좌초해 고생했다는 대보초(Great Barrier Reef)….
문경수의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마음산책)를 펴놓고 있는 나, 이제 서(西)호주에 가는 꿈을 꾼다. 시드니에서 대륙 서쪽 끝에 4000km 떨어진 곳이다. 퍼스(Perth), 샤크 만(Shark Bay), 카리지니 국립공원, 노스 폴(North Pole)….
과학탐험가인 저자는 서호주의 최대 도시 퍼스에서 살았다. 한인(韓人) 여행사에서 서호주 지질 명소 탐방 가이드로 1년간 일했다. 인도양에 접한 항구에 살며 그는 35억~25억 년 전 지구가 살아 숨 쉬는 이 땅을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로 일하게 된 그는 이곳에서 호주 최고의 지질학자 마크 반 크라넨동크 박사를 만났다.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에게 그런 만남이 된 적 있을까? 어깨를 내주고 목말을 태워준 적 있나?
시아노 박테리아가 만드는 ‘아주 오래된 산소’
저자는 2010년 크라넨동크 박사가 안내하는 지구 최고의 우주생물학자 23명과 북쪽 필바라 지역(Pilbara Region) 답사 여행에 참가하는 기회를 잡았다. 이 책은 그들과 함께하며 배우고 본 서호주 지질 여행기(旅行記)다. ‘오래된 산소’가 이 여행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나는 책을 보면서 컴퓨터를 켜고 구글 지도를 컴퓨터 화면에 띄어놓았다. 책에 언급된 지질학 성지를 구글 지도에서 확인했다. 첨부된 관련 사진을 보았다. 서울 종로 북악산 기슭의 집에 앉아서 서호주 가상현실 여행을 시작했다. 샤크 만의 해멀린 풀(Hamelin Pool·세계 자연문화유산), 덕 크릭의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카리지니 국립공원의 핸콕 협곡과 데일스 협곡, 35억 년 전 퇴적암층인 마블 바(노스 폴)의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가장 유명한 곳은 샤크 만의 해멀린 풀. 이곳 스트로마톨라이트에는 그 유명한 시아노박테리아가 산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모여 살면서 매트가 만들어지고, 이게 돌덩이처럼 굳어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생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지구 역사상 최초로 산소를 만든 생물. 지구를 산소로 흠뻑 채운 귀한 존재다. 인류는 시아노박테리아의 수고에 감사해야 한다.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은 지구촌 곳곳에서 발견된다. 샤크 만이 특별한 건 그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계속 크고 있다. 얕은 모래 해변 물속에 자라는 스트로마톨라이트 앞에 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암석 표면을 살피니 시아노박테리아가 태양빛을 받아 광합성하며 뿜어내는 산소 기포가 선명하게 보였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산소가 만들어지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들은 35억 년 전 이래로 지금까지 자라고 있었다. 마틴 말로는 1년에 0.4mm씩 자란다고 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000년 동안 35cm가 자랐다. 해멀린 풀에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에는 시아노박테리아가 4%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 샤크 만의 스트로마톨라이트
샤크 만의 해안가 해멀린 풀에서 살아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발견한 건 1961년. 고생물학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이곳에 시아노박테리아가 살고 있는 건 만(灣) 안의 매우 높은 염도 때문이다. 샤크 만 해멀린 풀 바다의 독특한 조건 때문에 시아노박테리아가 살고 있는 것이다. 35억 년 전 시아노박테리아의 광합성 활동은 이산화탄소와 질소로 구성된 원시 대기를 산소가 풍부한 공기로 전환시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등생명체가 등장했고 인간 진화로 이어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아노박테리아는 초기 생명체에 대한 고생물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대우받는다.
작가 빌 브라이슨은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에서 샤크 만의 스트로마톨라이트에 관해 말한다. 샤크 만 편의 제목은 ‘진정한 시간 여행으로의 초대.’
“스트로마톨라이트는 특징이나 광택이 없고 형체도 없는 회색 덩어리다. 인정하건대 그리 멋있고 인상적이지 않다. 그게 흥미진진한 것은 그것에 담긴 개념 때문이다. 여러분은 지금 살아 있는 바위를 보고 있다. 지구가 탄생하던 순간으로 4분의 3 정도를 거슬러 올라간 35억 년 전의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흥미진진하지 않다면 무엇이 흥미진진할지 나는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호주, 산소혁명의 진정한 수혜자
카리지니 국립공원은 샤크 만에서 북동쪽으로 5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세계적인 철광 산지 한복판이다. 국립공원 내 옥서(Oxer) 전망대는 4개의 협곡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협곡 중 데일스 협곡과 핸콕 협곡은 한국의 과학 마니아들도 즐겨 찾는다. 〈서호주〉란 책을 낸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회원들이 그중 일부다.
특히 데일스 협곡 내 서큘러 풀(Circular Pool)에서의 수영은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한다. ‘20억 년 전 바다’에 몸을 담그는 느낌이라니. 무엇에도 비교하기 힘들 거다. 물은 20억 년 전 철광층 위에 담겨 있다. 상상이 되지 않는 과거로의 여행.
카리지니 철광층은 당시 바닷속이었고, 이는 물속에 산소가 녹아 있었다는 걸 말한다. 띠 모양의 ‘호상(縞狀)철광층’이 그 증거다. 붉은 띠(산화철 퇴적층)와 흰 띠(규산이 들어 있는 퇴적층)가 번갈아가며 퇴적층을 만들었다. 시아노박테리아가 산소를 뱉어내 물속에 산소가 많았을 때는 산화철이 생성됐고, 산소가 없을 때는 산화철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붉은 띠는 물속에 산소가 많을 때, 흰 띠는 산소가 부족할 때를 가리킨다. 호상철광층은 원시 지구의 산소 농도가 오르락내리락했다고 말해주는 자연의 언어다.
카리지니 철광층이 포함된 해머즐리 산맥의 철광산지는 동서로 500km, 남북으로 200km다. 한반도 남쪽 크기다. 철광석 순도 60%.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매장돼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호주는 “시아노박테리아로부터 시작된 산소혁명의 진정한 수혜자“라고 불린다.
서호주에 ‘노스 폴(North Pole·북극)’이 있다. 카리지니 국립공원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km 지점. 호주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다. 남반구에 북극이 있다니, 이름을 지은 사람들 짓궂다. 35억 년 전 땅이다. 호주 말고 다른 지역에선 이렇게 오랜 땅이 노출되어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지질학 용어로 ‘와라우나층군’의 퇴적암 지대. 20세기 초 골드러시 바람이 불었던 마을 마블 바(Marble Bar) 인근에 있다. 이곳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발견됐다. 산소를 만들어내는 미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가 기생하며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을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생물이 만든 것인지, 물리적 과정이 만든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앤드류 놀 하버드대 교수는 “다른 세균도 스트로마톨라이트 매트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생명 최초의 30억 년〉 92쪽).
35억 년 전 땅을 보러 지구촌의 우주생물학자가 몰려온다. 우주생물학은 생물 탄생과 진화를 연구하여 지구 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를 알고자 하는 학문이다. 언젠가 인류가 개척해야 할 화성을 연구하려면 서호주에 가야 한다. 서호주 환경이 화성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한 우주생물학자가 서호주 필바라 지역을 찾는 이유다. 서호주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이 일부 촬영됐다고 한다.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의 저자는 ‘마션’ 원작소설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독백 장면을 소개한다. “지구에 돌아가면 서호주에 작고 예쁜 집을 한 채 살 것이다.”
저자 자신의 서호주 사랑 표현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은 나도 그랬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 시아노박테리아가 오래전 만들었던 산소를 호흡한다. 오래된 산소의 증거를 보러 그곳에 가고 싶다. 버킷리스트에 ‘서호주’를 담았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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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