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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상의 역사] 스포츠로 모두가 운동 즐기는 나라 만든다

우리나라 스포츠의 새 시대가 열릴 것 같다. 3월 21일 대한민국 체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통합 체육회가 출범한다. 생활체육 중심의 국민생활체육회와 엘리트체육을 육성해온 대한체육회가 합쳐져 '대한체육회'로 새 출발한다. 3월 10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대구육상진흥센터에서 '스포츠 문화·산업 비전 보고대회'를 가졌다.

스포츠(체육)정책이 운동의 차원을 넘어 문화와 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대한체육회가 새롭게 출범함으로써 우리나라는 국제대회 메달 획득 위주의 '엘리트체육'에서 국민의 건강 증진과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나라 체육정책은 학교체육의 시대, 엘리트체육의 시대, 생활체육의 시대를 거쳐왔다. 정부는 1950년대부터 체육 행정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어 학교체육의 육성을 위해 노력했으며, 1960년대에는 문화국에 소속된 체육과를 체육국으로 승격했다. 1962년 9월 17일에는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며, 명랑한 사회생활을 영위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체육진흥법을 법률 제1146호로 제정·공포함으로써 체육 발전의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했다.

 

수영

 

태릉선수촌과 체육회관도 1966년 완공됐다. 제3공화국 정부는 학교체육을 증진하기 위해 국민체조를 보급하고 체육 단위시간을 늘렸다. 이 시기 정부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 아래 건민체육(健民體育) 이념을 확산시켰다.

1970년대에는 학교체육뿐 아니라 여가를 활용한 체육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국립체육대학을 비롯해 각 도마다 체육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전국체육대회, 전국소년체육대회와 각종 경기대회가 꾸준히 개최됐다. 1972년 5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제1회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이 대회를 통해 꿈나무 선수들이 다수 배출됐다.

체력장 제도는 1972년부터 고교 입시에, 1973년부터 대학 입시에 적용한 이후 20년 넘게 지속되다 1994년 폐지됐다. 사실 1970년대는 국가 주도의 스포츠·체육 드라이브 정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때였다.

1975년부터 국제대회 입상 가능자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도입됐다. 입상자가 아닌 입상 가능자에게 병역 혜택을 주었다는 점에서 국제대회에서의 메달 획득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1977년에는 국민체조를 제정했다. 새마을운동과 생활체육을 연결한 대표적 사례다. 스포츠 국가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 체육정책은 전환기를 맞이했다. 1982년 3월 20일,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면서 정부는 체육부를 신설했다. 또한 국민체육진흥법을 전면 개정해 1982년 공포했고,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마련해 국민 생활의 안정과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시행했다.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대회를 개최하면서 이 시기에는 엘리트체육 위주로 체육정책이 진행됐다. 이를 발판으로 엘리트체육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며, 두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생활체육에 대한 수요도 몰라보게 증가했다.

제5공화국 때는 프로스포츠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1981년 프로야구, 1982년 프로축구, 1983년 프로씨름이 출범했다. 1985년에는 새마을체육회를 확대·개편한 한국사회체육진흥회를 발족했다. 3년에 걸쳐 프로 리그를 3개나 출범시켰다는 것은 놀랍지만, 엄밀히 말해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내린 결정이라기보다 정치적 차원의 결정이었다.

 

스포츠정책

▶ 엘리트체육, 생활체육, 학교체육을 균형 발전시키기 위해 통합 대한체육회가 3월 21일 출범한다.

 

주 5일제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활체육 확산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 통합

1990년대를 앞둔 1989년 4월 20일 공익법인으로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설립됐다. 1991년에는 체육부가 체육청소년부로 이름을 바꿨으며, 다시 1993년 정부조직 개편으로 문화부와 통합되어 문화체육부로 개편됐다. 정부는 생활체육 진흥을 위한 핵심 과제로 '국민체육 진흥 장기계획'을 마련했고 1990년대 초 체육정책의 목표로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설정해 생활체육을 통한 국민의 건강 증진을 강조했다. 스포츠 경주사업을 중심으로 생활체육 등 전반적인 스포츠 진흥정책이 추진되기도 했다.

1998년에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들어감으로써 생활체육에 대한 수요도 크게 감소했다. 그러다가 국가 부도 위기를 극복할 무렵 주 5일제와 근무시간 단축이 시행됐고 그에 따라 생활체육은 다시 부활했다.

 

체조

 

이처럼 정부는 생활체육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엘리트체육 육성에 더 많은 정책적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은 88서울올림픽 이후 2000년 시드니 대회(12위)를 제외하고 올림픽에서 줄곧 10위권을 유지한 스포츠 강국이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위 선양을 위해 엘리트체육에만 정책의 손길이 더 미치다 보니 엘리트체육만 비대해지는 불균형이 생겼다.

2000년대 중반 주 5일제가 전면 실시돼 여가시간이 늘고, 관람하는 스포츠에서 즐기는 스포츠로 사람들 인식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국민생활체육회는 2005년부터 '스포츠 7330(일주일 7일에 3일 이상 30분 운동)' 캠페인을 전개하며 생활체육을 육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통합 대한체육회의 새 출발은 의미가 크다. 체육 단체가 통합되면 엘리트체육 위주로 흘러가 생활체육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체육의 3대 축인 엘리트체육, 생활체육, 학교체육의 모든 영역에 앞으로 정책의 손길이 지혜롭게 다가가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번 통합이 한국 체육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앞으로 통합 체육회가 체육의 3대 축 모두를 아우르며 우리나라 체육의 내일을 밝혀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미국의 에릭 하이든(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빙상 5관왕의 신화를 쓴 스탠퍼드대 의학박사)처럼 '운동 기계' 대신 공부하는 선수들도 많이 나왔으면 싶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스포츠 문화·산업 비전 보고대회'에서 밝혔듯이 온 국민이 스포츠 문화·산업에 관심을 갖고 '즐거운 학교, 건강한 생활, 공정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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