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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4국에서의 짜릿한 전율은 거기까지였다. 험한 승부에서 던진 백 78의 끼우기 묘수, 그것을 우리는 신의 한 수라 불렀거니와, 3패 뒤의 1승이라 더욱 감동적이었다. 이 기세를 마지막 5국까지 밀어붙이기를 소망했으나 알파고는 만만치 않았다. 초반의 열세를 딛고 일어나 중원에서 세를 형성하더니 이내 승리로 이어갔다.

 

이세돌

 

인간과 인공지능(AI) 사이에 바둑을 놓고 '세기의 대결'을 벌인 이른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승 4패로 이세돌 9단은 대국을 마무리했다. 처음에는 제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다 해도 결국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을 대표하는 이 9단이 최소 4승 정도는 거둘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첫판부터 그게 아니었다.

2000여 대의 컴퓨터가 힘을 합쳐 한 명의 기사와 대결한 것과 비슷하다는 이번 대국은 세기적인 관심 그 이상의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역사적인 장면이었다고 말해도 좋겠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예언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논문으로 평가되는 앨런 튜링의 '계산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 〈정신(Mind)〉이라는 잡지에 발표된 것은 1950년의 일이었다.

"나는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논의하려고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논문에서 튜링은 기계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반론들을 다양하게 열거하면서, 그 심각한 반론들에 대해 조목조목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한마디로 그의 주장은 이랬다. "금세기 말에 가면 결국 낱말의 사용이나 일반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 수준의 견해들은 생각하는 기계들에 의해 별문제 없이 말해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구글 딥마인드가 튜링의 예언을 어느 정도 달성했는지 혹은 초과했는지,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아직 잘 모른다. 인공지능의 전개 과정에 대해 여기서 복기할 사정도 못 된다. 다만 인공지능의 진화 속도가 더 박차를 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짐작을 할 따름이다.

그래서 앞으로 인간들은 지금보다 더 섬세하고 복잡하고 깊은 정신으로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도 든다. 아울러 그럴수록 인간의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태도나 공감의 윤리 같은 것이 중시될 것이라는 어설픈 생각도 해본다.

사실 이번 대결에서 4국의 백 78수보다 내게 더 인상적인 것은 4국에 임하는 이 9단의 마음이었다. 3연패로 이미 패배가 결정된 상황, 수많은 인간들의 기대와는 달리 '생각하는 기계'에 진 '생각하는 갈대'의 마음은 얼마나 시렸을까?

그 깊은 슬픔을 넘어, 그럼에도 생각하는 갈대의 자존심을 위해, 기사의 영혼의 자존감을 위해, 모종의 소명감을 가지고 임했으리라.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는 생각하는 기계에 비해 얼마나 상처에 취약한가. 바로 그런 상황을 초극하고 백 78수를 둔 것이기에 그 장면이 그토록 예찬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미 진 게임이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것은 알파고와의 대결 이전에 자신과의 치열한 대결이 더 문제였을 터다. 그것을 위해 아주 깊은 정신으로 실패 연습을 한 것이기에 참으로 장하고 아름답다. 이번 대결이 세기의 축제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태도 덕분이 아니었을까.

흔히 사람들은 여건이 좋을 때, 승기가 확실할 때는 실력 발휘를 잘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실패나 패배가 확실해지면 서둘러 포기하고 상처받고 그래서 아예 그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이나 사회로부터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전에 스스로 낙인을 찍고 불안에 빠지고 절망하는 사례도 흔하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은 실패한 상황으로부터 배우려 했다. 실패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려 했다. 과연 프로답다. 그가 비록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졌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로부터 역동적으로 배우면서 진화하려 한 그의 실패학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으로 믿는다.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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