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끝내 부치지 못한 YS(김영삼 전 대통령) 연하장 4800장. 연말마다 정성… 한때 1만 명에 발송, 제작업체 초안 만들고 인쇄 취소."(2015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주인이 세상을 떠나자 연하장은 끝내 만들어지지 못했고, 4800여 명에게 전달될 예정이던 연하장은 업체 컴퓨터에 디자인된 상태로만 남게 됐다는 신문 기사가 구보 씨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지. 어디 대통령을 지내신 분뿐이겠어? 우리 모두는 연말연시가 되면 송년과 새해맞이를 겸해 서로 인사를 전해왔어.

▶ 12월 14일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인쇄소에서 최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 이름으로 보내는 신년 연하장이 제작되고 있다. 당초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될 뻔했지만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의 뜻에 따라 제작이 이뤄졌다.
광복 직후엔 지금처럼 연하장이나 크리스마스카드를 파는 곳이 없었지. 구보 씨가 중학생 때는 직접 카드를 만들어 보냈어. 흰색 도화지를 가위로 쓱쓱 잘라 카드를 만드는 거야. 그다음에 단풍잎이나 참나무 잎을 수산화나트륨 수용액에 넣으면 잎맥만 염색이 돼. 염색된 이파리를 조심조심 핀셋으로 집어내 말린 다음 잘라놓은 도화지에 붙이는 거야. 예쁘게 장식하려는 거였어. 그다음에 '근하신년(謹賀新年)' 같은 문구를 쓰면 거의 마무리됐지.
이 말은 지금도 쓰이니 다들 알 거야. 대표적인 새해 인사 문구지만 연하장이라는 말과 함께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지. 1950~60년대엔 성탄절 인사보다 새해를 축하하는 인사말 위주였어. 왜냐고? '근하신년' 또는 '하정(賀正 : 새해를 축하함)'이라고 써서 연하장을 보내는 풍속이 일본에서 들어왔기 때문일 거야, 아마.
그러다 1957년 12월 우체국(우정사업본부의 전신)에서 연하우편을 발행하면서부터 한국형 연하장의 시대가 열렸어. 초창기엔 주로 엽서형 연하장이 많았는데 크리스마스카드를 겸해서 보냈어. 나중에 점차 카드형 연하장으로 바뀌면서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가 저절로 다른 용도로 구별됐지. 그래서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는 크리스마스카드로 송년 인사를 전하고 새해 인사로 연하장을 보내는 관행이 정착됐지. 당시 연하장엔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해, 학, 소나무 그림이 자주 등장했지. 겨울 풍경이나 한국의 전통 풍속이 배경 그림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어. 대개 '근하신년' 같은 말은 금박으로 인쇄돼 나머지 인사말만 한두 줄 쓰면 연하장이 완성됐지.
1970년대는 송년과 새해 인사를 겸해 연하장을 보내는 풍습이 대대적으로 확대된 시기야. 초·중·고생들은 조개탄 난로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크리스마스카드를 정성껏 만들었지. 도시 학생들은 카드를 사서 보내기도 했지만 돈이 없던 시골 학생들은 카드를 직접 만들어 보내는 경우가 많았어.
어느 연말쯤 시골 초등학교에 간 적이 있었지. 학생들이 하얀 도화지에 정성껏 그림을 그린 다음,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를 그려 넣고 있더라고. 그때까지 영어를 배우지 않았을 테니 누군가 가져온 샘플카드를 보고 그림 그리듯 알파벳을 그렸던 거야. 어떤 학생이 'Merry Christmas'와 'X-mas'라고 쓰인 카드를 (읽지는 못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
아무튼 그 시절엔 손수 카드를 만들고 겉봉투에 우표와 크리스마스실(Christmas Seal)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어. 그런데 요즘은 크리스마스실도 거의 안 붙이는 거 같더라고.

▶ 1990년 12월 6일 서울 양천구 목동우체국 풍경. 세밑 해외 우송 연하우편물이 빼곡히 쌓여 있다.
사람 사는 일이 어디 크게 변하겠어? 1980~90년대에도 연하장 보내기는 계속됐지. 서민들은 우체국 연하장을 많이 이용했어. 우체국 연하장은 시중에서 파는 연하장보다 값이 저렴했어. 봉투에 우편요금 표시가 돼 있어 별도로 우표를 붙이지 않고도 보낼 수 있었지. 구보 씨도 그 무렵 우체국 연하장을 많이 이용했는데, 봉투 입구의 접착력이 별로 좋지 않아 침만 발라서는 잘 붙지 않는 거야. 그래서 행여나 봉투가 열릴까 싶어 조심스럽게 풀칠해 우체통에 넣고는 했지.
당시 체신부에서 발행하던 연하엽서엔 정선,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이 자주 등장했어. 기업체 대표나 사회 저명인사들은 아예 자기 이름까지 인쇄해 다량으로 발송하는 사례가 많아서 언론에선 연하장 일괄 발송의 문제점을 꼬집고는 했어. 열어보면 대개 이런 내용이었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여 온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빕니다." 감동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무미건조한 내용이었지.
2000년대부터 연하장 쇠퇴
몇 번 클릭만으로 인사 전하는 시대
아마도 2000년대부터는 연하장이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이 분명해. 연하장 받아볼 일이 점점 뜸해졌으니까. 우정사업본부 통계를 찾아보니 2006년에 1039만 장이던 발행량이 2008년엔 915만 장, 2009년엔 742만 장으로 줄어들었다는 거야. 앞으로도 발행 수치는 계속해서 감소하겠지.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편하게 보낼 수 있으니 굳이 우편 연하장을 보낼 필요가 없어진 거지. 몇 번 클릭만으로 보내는 인터넷 카드도 한동안 인기였지. 2006년엔 음성 녹음 연하장이, 2007년엔 시 낭송 연하장이 발매되기도 했어.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이었겠지만 구보 씨가 보기엔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연하장의 마지막 몸부림 같았어.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연하장 풍습도 바꿔놓았는데, 그 도도한 흐름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오죽했으면 "송년 인사는 e-카드가 제격"이라는 광고 메시지까지 나왔을까 싶네.

▶ 2016년 새해를 앞두고 11월 23일 서울중앙우체국 직원들이 이날부터 판매가 시작된 우체국 연하카드와 연하엽서를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업본부는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앞두고 행복을 상징하는 전통 문양과 함박 웃는 원숭이 모습을 담은 연하카드와 연하엽서를 어김없이 선보였어.
이메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내던 새해 인사까지는 그래도 좋았어. 그런데 받는 사람은 명시하지 않고 보내는 사람 이름만 있는 스마트 문자나 카톡 메시지는 너무 심한 것 같아. 1980~90년대 사회 저명인사들이 연하장을 일괄 발송하던 행태와 같은 거지. 똑같은 문구로 대량 살포되는 문자메시지는 받는 이의 마음에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할 거야. 좀 번거롭더라도 받는 분의 이름이라도 써서 보내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지.
정말로 사랑하는 분께는 자필로 꾹꾹 눌러 쓴 연하장을 보내보면 어떨까 싶네. 제발 받는 이의 이름이 없는 단체 문자메시지는 보내지 마시길!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전 한국PR학회장)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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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