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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시인 원재훈] 어린 천사와의 포옹

어린 천사와의 포옹

 

며칠 전 어린아이 하나가 나에게 뽈뽈뽈 기어왔다. 식당의 마루에 앉아 있는데 마치 먹이를 발견한 짐승처럼 나에게 기어 와서는 내 무릎 앞에서 겨우 일어나더니 엎어지듯이 나를 포옹했다. 두 팔로 나를 포옹하고는 “아뿌, 아뿌”라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그저 웃기만 했다.

아이가 나에게 달려든 것을 확인한 젊은 엄마는 “아이고, 이런 이런” 하면서 아이를 떼어내려고 했다. 엄마의 손길에 내게서 조금 떨어진 아기가 다시 휙 돌아서서는 나를 다시 한 번 포옹해주었다. 아이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살덩이를 안아 들고 있으니 향기가 돌고 부드러운 촉감이 몸으로 전해진다. 순간적으로 무척 행복했다.

천사란 이런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다시 아이를 떼어내 엄마 품에 돌려주는데도 아이가 고개를 나를 향해 돌리면서 “아뿌, 아뿌” 한다.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엄마는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잘 이러지 않는데 이상하네요. 아이를 안아줘서 고맙습니다”라면서 사과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오히려 아이를 안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이를 상대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남의 아이를 안는다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하여간 나는 그날 천사를 보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안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안아준 것이 아닐까?’

사실 그 전날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떤 일이 있어 다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가 사람을 만나고 그와 대화를 하고, 다소 걱정스러운 결론을 내고는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불신감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회의감에 젖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옹알이를 하는 아이가 엉뚱한 장소에서 나에게 다가와 포옹을 했으니. 이는 어쩌면 신의 계시일지 모른다고 느껴진 것이다. 그 아이의 등에는 천사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비록 엄마들이 만들어준 인조날개지만 그 날개를 퍼덕거리며 엄마 품에 안겨 가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잠시 천사를 본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이 사소한 일이 연금술사의 기적처럼 여겨진다.

세상이 지옥처럼 여겨질지라도 천사들이 산다. 사실 천사가 가장 필요한 곳이 지옥이 아니겠는가. 가까운 소식에서부터 먼 소식까지 법정구속을 당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끔찍하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다. 때로는 세상이 지옥처럼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대문을 열고 나서면 보이는 나무와 풀처럼 소소하지만 다정한 사람들이 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중년의 사내들은 포옹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성리학 전통 속에서 이어져온 우리 문화가 서로 몸을 끌어안는 것은 유별난 행동으로, 점잖지 못하게 여기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안아보기를 좋아한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만 이미 내 아이가 다 자라 성인이 되었기에 어린아이를 안아볼 기회가 거의 없다. 그저 다 자란 딸을 보면서 ‘저 녀석이 어렸을 때 참 좋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정도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젊은 엄마들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평화란 저런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모습은 이 세상에 천사들이 산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헌사에서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서 내 헌사를 이렇게 고쳐 쓰련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라고 썼다.

역사상 가장 가혹한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탄생한 〈어린 왕자〉가 요 며칠 전 나에게 잠시 다녀갔다. 그 귀여운 녀석이 천사처럼 여겨지는 이유이고, 내가 처음엔 어린아이였다는…, 그래서 그 기억을 되살려 순수한 마음으로 뽈뽈뽈 기어서 현실에 지친 인간을 안아주라는 다감한 메시지로 여겨진다.

 

· 원재훈 (시인) 201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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