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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문화, 지금] 아시아 한류!! ‘현지화’와 ‘쌍방향’ 전략이 필수다

12월 7일 밤 베트남의 수도 호치민의 탄손누트국제공항. 인천을 출발해 도착한 한국 여객기 손님들이 짐을 찾기 위해 기다리는데 주변이 소란스럽다. 공항 청사 2층 유리벽으로 막힌 바깥에서 10대 소녀 무리들이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를 눌러댄다.

피켓에는 슈퍼주니어의 ‘예성’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제야 눈치를 채고 살펴보니 옆에 예성과 일행이 짐을 찾기 위해 서 있었다. 자정이 지난 시각, 호치민 시내에서 공항까지 짧지 않은 거리임에도 예성의 베트남 팬들이 환영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가장 고전적인 한류의 풍경이다.

베트남에서 한류는 여전히 거세다. 최근 중국에서는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 논란이 일고 있지만, 베트남은 이와 무관하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우리와 다른 심의기준을 제외하면 한국 대중문화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다.

 

한국 멀티플렉스 스크린 200개
한국 영화 관객 동원 2500만 명

한국 영화는 자국 영화만큼이나 친숙하고, 한국의 멀티플렉스가 영화시장을 휩쓸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8개에 불과하던 CGV와 롯데시네마가 지금은 42개로 늘어났고, 스크린 수도 200개를 넘어섰다. 올해 이들 극장의 관객 동원도 2500만 명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한국 콘텐츠의 일방적 수출만으로 베트남에서 한류가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미 20년 가까이 한국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것에 자극받아 자국 문화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있는 베트남에서 한류의 일방적인 흐름도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선망과 호기심의 대상이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베트남 젊은이들의 평가도 달라졌다. 자국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환상’, ‘가짜’라는 소리가 나온다. 일방적 흐름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우리의 한류 전략도 바뀌고 있다. 이른바 ‘현지화’다. 이미 중국에서는 시작한 지 오래다. 우리의 아이디어와 콘텐츠, 제작 노하우로 베트남 현실과 정서에 맞춘 콘텐츠를 만드는 것. 영화에서는 지난해 말 개봉한 ‘수상한 그녀’의 베트남 버전인 ‘내가 니 할매다’가 대표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해 최고 흥행작에 올랐고, 역대 베트남 영화 흥행 2위를 기록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제작비 80만 달러를 투자해 무려 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것도 아무런 반감 없이.

 

내가 니 할미다

▶지난해 베트남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수상한 그녀’의 베트남 리메이크 버전인 ‘내가 니 할매다’ 포스터. ⓒ동아DB

 

K-팝과 오락 프로그램의 현지화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2013년 베트남 방송채널인 VTB에서 방영한 ‘노이 사오 비엣’은 우리의 K-팝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을 베트남화한 것이다. ‘칸칸쇼’는 베트남 연예인을 초대해 한국 스타일로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이고, 베트남 가수들이 팬들의 신청곡을 부르는 ‘시키면 부른다’ 역시 우리의 예능 프로그램을 현지화한 것이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지난해부터는 지상파 방송이 아닌 모바일 앱의 예능까지 우리 프로그램을 현지 버전으로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사실 단순한 콘텐츠 수출에서 벗어난 이 같은 한류의 현지화 전략은 베트남에서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베트남 영화와 드라마에 한국 감독이나 스태프가 참여하고, 우리의 제작 노하우를 제공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은 자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수준을 높이고 대중문화 산업과 시장을 키운다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기도 했다. 나아가 자국의 문화콘텐츠를 한국뿐 아니라 세계시장에 수출하겠다는 장기적인 포부까지 가지고 있다. 이른바 ‘쌍방향’ 문화 흐름이다.

 

쌍방향은 문화의 자연적 흐름
현지 현실과 정서에 맞춘 콘텐츠 만들어야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산업과 문화가 그렇듯이 한류도 언제까지 일방적일 수는 없다. 그들의 문화 또한 우리 가까이로 다가와야 한다. 2007년 한 · 베트남 최초 합작영화인 ‘므이(감독 김태경)’에 베트남 언론과 영화계, 관객들은 가슴 벅차했다. 한국 영화가 베트남 이야기를 하다니. 베트남 배우가 한국 영화에 나오다니. 많은 베트남 젊은이들이 자부심으로 이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반대로 참패했다. 제작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작품의 완성도에 문제가 있었다. 합작영화가 흔히 그렇듯 ‘므이’는 두 나라의 이질적 거리감을 섬세한 감정의 일치로 좁히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촬영하고, 베트남 여배우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영화라는 선입견도 작용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10년, 순수 베트남 영화 사상 첫 한국 개봉의 ‘역사’를 쓴 르후인 감독의 ‘하얀 아오자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해 베트남 전역에서 개봉돼 우리나라로 치면 1000만 명에 해당하는 50만 명의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든 영화였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아 관객상을 수상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렵게 대기업 멀티플렉스 12개관을 확보하고, 베트남에서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주한 베트남대사까지 극장에 영화를 보러 왔지만 보름도 버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한국 관객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무관심했고, 농촌에 사는 베트남 이주여성들은 처음으로 모국의 대중영화를 접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롯데센터 하노이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롯데센터 하노이’ 오픈식에서 소녀시대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동아DB

 

이런 실패를 겪은 ‘므이’의 제작자는 지금 아예 이 작품을 ‘여고괴담’처럼 순수 베트남 버전의 시리즈로 현지화해 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얀 아오자이’ 대신에 한국 영화 ‘집으로’에서 아이디어를 따와 농촌 체험활동을 위해 외가인 베트남에 간 다문화가정 어린이가 외할머니와 겪는 문화적 충돌과 사랑 이야기를 영화 ‘늙은 자전거’에 담아 베트남과 한국에서 상영하려 한다.

모든 나라에서 그렇지만, 특히 베트남에서의 한류의 미래는 역시 현지화와 쌍방향이 답이다. 우리도 베트남 콘텐츠를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의 자연적인 흐름이기도 하지만, 한국에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수많은 여성들과 그 가족들이 있고, 그들을 위한 모국의 대중문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2050년이면 다문화가족이 전체 인구의 5.11%(216만5000명)를 차지하고, 아이들만 100만 명 가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초등학생의15.3%, 중학생의 12%이다. 그들에게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외면하고, 우리 문화만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대현

 

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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