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누구 말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분명치 않다. 한국인인 내가 70년 전 미국과 유럽인의 고민을 다룬 이 책을 남다르게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한 핵 때문이다. 한국은 북한 핵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이에 무감각하다. 별일 없겠지 하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이래도 되는가? 나는 70년 전 실라르드와 텔러의 고민 이상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본다. 아니면 언젠가 비싼 값을 치를 것이다.

왜 그 헝가리인들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에 앞장섰을까? <원자폭탄 만들기>(리처드 로즈·사이언스북스)를 읽고 핵폭탄 시대를 헝가리 과학자 레오 실라르드가 시작했고, 그걸 완성한 것도 헝가리 과학자 에드워드 텔러란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북한 핵 위협에 노출된 이 시대 한국인은 70년 전 그 헝가리인들이 왜 핵무기 개발에 강박증을 가졌나를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책은 1933년 한 헝가리 물리학자 머릿속에서 핵 연쇄 반응이란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부터 ‘사상 최대의 물리학 실험’으로 불리는 미국의 원자폭탄 만들기(1942~1946)를 말한다. 1, 2권으로 된 두툼한 이 책은, 1941년 핵분열 발견까지와 그 이후로 나눠볼 수 있다.
나는 전반부인 핵물리학 역사를 재밌게 읽었다. 우라늄 방사선 발견(1896년, 프랑스의 앙리 베크렐), 전자 발견(1897년, 영국의 J. J. 톰슨), 방사능원소의 자연 붕괴와 반감기 발견(1907년, 어니스트 러더퍼드-프레데릭 소디), 원자핵 발견(1911년, 어니스트 러더퍼드), 중성자 발견(1932년, 제임스 채드윅), 우라늄 원자핵 분열 발견(1941년, 독일 화학자 오토 한) 이야기다. 특히 덴마크의 닐스 보어(1885~1962)가 훌륭한 인격자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는 전자 모델을 개발하고 코펜하겐 해석으로 양자역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학문 영역 밖에서는 핵무기가 가져올 암울한 미래를 고민하고 히틀러에게서 덴마크 유태인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에 비해 이 책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책 후반부는 핵분열을 확인한 여러 나라 물리학자가 핵무기 개발로 줄달음질치는 과정을 전달한다. 내용의 대부분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 이야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핵무기의 미래를 말하면서 끝난다. 나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상세한 내용을 접한 적이 없어 내용이 흥미로웠다. 저자 리처드 로즈는 미국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방대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스토리와 함께 버무려 알기 쉽게 들려준다.
아인슈타인을 설득한 실라르드
많은 관점과 생각할 거리를 갖고 있는 책. 그중에서도 <원자폭탄 만들기>가 헝가리인 두 사람, 레오 실라르드(1898~1964)로 시작해 에드워드 텔러(1908~2003)로 끝났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읽었다. 실라르드는 일반인에게는 무명인 과학자다. 그는 아인슈타인을 설득해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원자폭탄 개발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쓴 걸로 역사에 남아 있다. 실라르드 편지와 아인슈타인 편지는 1939년 10월 11일 루스벨트에 전달됐으며 이후 미국은 원자폭탄 개발로 간다(이 대목에서 대개는 아인슈타인 이름만 나온다).
책은 레오 실라르드가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후문 오른쪽에 있는 러셀 스퀘어를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걸로 시작한다. 낯선 이름의 이 헝가리 망명객이 왜 책 서두에 한참이나 나오는지 나는 처음에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실라르드는 이 모든 것의 출발이었다. 그는 학자로서 뛰어났다. 중성자를 방아쇠로 우라늄 핵 연쇄 반응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가장 먼저 생각했으며(1933년), 핵 연쇄 반응을 확인했다(1939년, 이탈리아계 미국 학자 엔리코 페르미와 공동 연구). 그리고 이게 무기가 되면 게임 법칙이 변할 것임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레오 실라르드는 20세기 중반 세계 과학계에 농담처럼 돌아다닌 ‘헝가리인으로 위장한 화성인’ 중 한 명이다. 실제로는 문명이 앞선 화성에서 온 사람인데, 헝가리 사람인 양 속이고 있다는 질시 어린 얘기였다. <원자폭탄 만들기>에는 당시 존재감이 뚜렷했던 헝가리 출신 과학자 7명이 나온다. 태어난 순서대로 보면 테오도르 폰 카르만(1881~1963, 항공역학자), 게오르크 헤베시(1885~1966, 화학자·1943년 노벨화학상), 마이클 폴라니(1891~1976, 화학-과학철학자), 레오 실라르드(1898~1964,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1902~1995, 1963년 노벨물리학상), 존 폰 노이만(1903~1957, 수학자), 에드워드 텔러(1908~2003, 물리학자)다.
이 헝가리 화성인들은 1920년대 공부를 위해, 또는 반유대인 바람이 불면서 자유를 찾아 부다페스트를 떠난다. 실라르드와 에드워드 텔러는 독일로 간다. 독일은 1920년대 현대 물리학의 중심지였다. 실라르드는 1923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독창적인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텔러는 1930년 독일 라이프치히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 원리 발견자·1932년 노벨물리학상) 밑에서 박사가 됐다. 실라르드는 독일에 정착하려 했다. 그러나 1933년 빈으로 가는 기차를 오르며 다시 유랑을 시작했다. 히틀러가 제국의회를 공격하고 유태인 탄압에 나서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텔러도 유대인 핍박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간다.
영국을 거쳐 미국에 간 실라르드. 그를 격동케 한 건 1939년 1월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1885~1962) 입을 통해 전해진 핵분열 소식이었다. 독일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화학자 오토 한와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 핵분열을 1938년 말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실라르드와 텔러는 아인슈타인을 만나러 갔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쓰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운전을 못하는 실라르드는 텔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당시 아인슈타인이 머물던 뉴욕 주 롱아일랜드 피코닉으로 향했다.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와, 이를 상세하게 보충하는 실라르드의 편지는 월스트리트 경제인 알렉산더 삭스를 통해 백악관에 있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실라르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은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 물리학과 로버트 오펜하이머 교수가 책임자였다. 오펜하이머는 1943년 뉴멕시코 주 로스앨러머스에 연구소를 차리고 미국 최고의 핵물리학자들을 초청했다. 로스앨러머스 과학자들의 평균 나이는 25세였다. 오펜하이머, 한스 베테(독일계·1967년 노벨물리학상), 에드워드 텔러, 에드윈 맥밀런(초우라늄 넵티늄 발견·1951년 노벨화학상), 에밀리오 세그레(이탈리아계·1959년 노벨물리학상)는 나이가 많은 축이었다.
서로 다른 길 선택한 실라르드와 텔러
이들 임무는 핵폭탄 원료가 되는 두 가지 물질, 즉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으로 폭탄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라늄 238에서 우라늄 235를 추출해내고 플루토늄을 만드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우라늄 235는 자연 상태에선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힘든 공정을 거쳐 뽑아내야 했다. 플루토늄은 원자로 사용 후 연료에 들어 있다. 이런 이유로 거대한 공장을 지어야 했다. 우라늄 235로 만든 핵폭탄은 길쭉한 포신형이고, 플루토늄으로 만든 건 둥그런 디자인의 내폭형이다. 포신형 우라늄 폭탄(리틀 보이)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플루토늄 폭탄(팻맨)은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원자폭탄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무렵, 실라르드와 텔러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실라르드는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 전쟁 승리를 위해 핵실험과 핵무기 사용을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전후 미국과 영국이 소련과의 핵무기 경쟁에 돌입하는 걸 우려했다. 그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미국 정부에 핵 개발 정보를 소련과 공유하라고 요구했다. 상대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현실 정치인은 과학자의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며 이들을 무시했다. 정치인이 귀를 기울인 건 에드워드 텔러의 말이었다.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수소폭탄을 미국이 개발해야 한다는 게 텔러의 생각이었다. 원자폭탄이 히틀러가 세상을 지배하는 걸 막을 수 있다면, 수소폭탄은 스탈린의 지배를 막을 수 있다고 텔러는 생각했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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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