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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자물쇠와 열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사내가 있었다. 원통했지만 그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했다. 그런 그를 위해 직조공인 아내는 깔개를 만들어 넣어주었다. 어찌 알았던지 아내가 짠 깔개에는 감방 문의 자물쇠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사내는 교도관에게 연장을 구해주면 예쁜 공예품을 만들어주겠노라고 제안했다.

금속 세공인인 자기로서는 솜씨가 녹슬지 않아 좋고, 교도관 입장에서는 공예품을 내다 팔면 금전적 수입이 생기니 서로 좋은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 말에 교도관은 연장을 구해주었고, 세공인 사내는 공예품을 만드는 한편 틈틈이 열쇠를 만들어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수피(Sufi, 이슬람교 신비주의 수행자) 지도자 이드리스 샤(Idries Shah)가 들려준 우화의 한 대목이다.

 

자물쇠와 열쇠

 

<에니어그램의 영적인 지혜>의 저자 산드라 마이트리는 이 우화를 소개하면서, 그 우화의 은유를 에니어그램 전문가의 입장에서 풀어낸다. ‘자아의 구조’라는 미궁에 갇힌 인간 상태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모습과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좁은 한계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감옥에서 탈출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에게 허락된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즉,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라면 그를 가두어두는 구조, 그 자물통의 구조를 제대로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면 그것을 열어나갈 열쇠를 마련할 방안도 요원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화에서처럼 자물쇠 도안이 요긴하다는 얘기다.

오래 숙고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이 자물쇠와 열쇠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쉽게 풀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난해한 자물쇠를 주조해낸다. 사람은 그것을 풀어야 한다. 예전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이야기에서처럼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절박한 경우도 많다.

작은 문제를 풀면 그보다 더 크고 복잡한 문제가 기다린다. 세상의 자물쇠들은 거의 무한대로 널려 있는 듯 보인다. 그 자물쇠들을 제대로 열 수 있는 열쇠를 만드는 세공인의 부단한 지혜와 노력이 세상 살아가기의 핵심적 방편이 아닐까 싶다.

학회 발표를 위해 잠시 유럽을 다녀왔다. <햄릿>의 무대로 유명한 코펜하겐 근교의 크론보그성의 기념품점에서 우연히 열쇠가 눈에 들어왔다. 손이 갔다. 벨기에의브루헤에서 다시 17세기 진품 열쇠 하나를 구했다. 기념품으로 제조한 열쇠에 비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지만, 열쇠의 은유에 시나브로 이끌렸다.

사전 정보 없이 들렀던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다채로운 열쇠의 형상을 보았을 때, 나는 아예 햄릿의 고뇌에 동참하는 기분이 되고 말았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며 생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열쇠를 찾으려 했던 캐릭터가 바로 햄릿 아니었던가.

짧은 여로에서 귀환한 다음, 열쇠를 책상 앞에 놓고 명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옛이야기의 신비 체험처럼 "열려라, 참깨!" 하고 외치면 닫힌 문이 스르르 열리는 세상이라면 그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열려라, 참깨!"의 신비를 반납한 지 오래인 지금, 여기서 우리는 저마다 앞에 놓인 닫힌 문 앞에서 오래 서성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닫힌 문은 언제나 완강한 듯 보이고, 그것을 열 열쇠는 아직 우리에게 마련되기 이전의 상태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문을 열어야 하리라. 나만의 열쇠로 내 문제 앞에서 외쳐야 하리라. 열려라, 참깨! 그러니 문제는 열쇠다.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1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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