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지런히 발명가 이름을 외워야 했다. 페니실린-플레밍, 무선전신-마르코니, 전구-에디슨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요즘 많이 쓰이는 스마트폰이며 인터넷 등은 물론이고 TV며 라디오는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보기술(IT) 시대에도 눈에 띄지 않게 우리 삶에 기여하는 '사소한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문구만 해도 그렇다. 볼펜, 연필 같은 필기구에서 클립, 수정액까지 온갖 사무용품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잊고 지낸다.
매년 '지루함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영국인 괴짜 작가가 쓴 이 책은 바로 '사소한 것들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다룬 것이다. 역사, 문학, 영화 등을 풍성하게 인용해 온갖 문구류의 역사를 들려주는데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종이 서류를 묶어두는 클립을 보자. 1899년 노르웨이인 요한 볼레르가 발명했다는 이 사무보조용품이 한때는 저항의 상징으로도 쓰였단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노르웨이 사람들이 나치 점령군에 대항해 '함께 뭉치자'는 뜻으로 종이를 한데 묶어주는 클립을 옷에 달고 다녔다는 것이다. 요즘은 한물간 사인펜 이야기도 흥미롭다. 세계적 문구 회사인 일본의 펜텔사를 세운 호리에 유키오가 서예용 붓처럼 쓰이지만 볼펜처럼 편리한 문구를 만들고 싶었단다. 그는 한 줌의 아크릴 섬유에 수지를 묻혀, 가는 펜촉처럼 단단하지만 잉크를 쉽게 빨아들일 정도로 부드러운 펜촉을 만들었다. 서명하기에 알맞아 '사인펜'이라 불린 이 신발명품은 1963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제품'이 되었고 제미니 우주계획에도 사용됐다.
스카치테이프의 일화도 흥미롭다. 미국의 3M과 듀퐁사의 합작이라 할 이 투명 접착테이프는 처음에 테이프 가장자리에만 접착제를 바른 제품이었다. 이를 두고 한 정비공이 "왜 접착제를 두고 그렇게 스카치(스코틀랜드 사람. 인색하다는 정평이 있다)처럼 굴어요라고 핀잔을 했던 데서 제품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스카치테이프가 현대인의 필수용품이 된 것은 대공황 때 출시된 가정용 제품 덕분이었다. 찢어진 책 등 가정용품을 수선하는 데 편리한 기능을 갖춘 이 제품은 경제가 어려운 때라 더욱 수요가 많았고, 그만큼 불티나게 팔렸다.
빅 볼펜에 얽힌 이야기나 몽블랑, 파버카스텔 등 명품 필기구의 유래,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이 애용한 연필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단순한 일화집 이상이다. 지은이 말마따나 문구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은이는 "테크놀로지라는 종(種)은 불멸"이라는 명언을 인용한다. 전구가 발명돼도 양초는 낭만의 상징으로 살아남았고, 만년필 또한 신분의 상징물로 꾸준히 판매된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빌 브라이슨 지음, 까치글방)와 더불어 읽으면 평소 무심코 흘려보내던 일상생활사의 깨알 같은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문구의 모험
제임스 워드 지음 |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376쪽 | 1만6000원
글 · 김성희(북칼럼니스트)2015.11.23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