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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서로공감]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믿고 선택하는 저자가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그중 한 사람이다. 전공을 살려 우리 옛 글에서 역사학자들이 간과하는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솜씨가, 감히 평하자면 탁월하다. 적지 않은 책을 냈지만 늘 느끼는 것이, 관심의 범위는 넓되 학문의 내공은 깊고 문장은 유려하면서도 단정하다.

강 교수의 책은 크게 두 부류다. 조선의 열녀가 만들어진 '신화'임을 문헌적으로 파헤친 〈열녀의 탄생〉(돌베개)처럼 진지한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책이 있는가 하면, 정사(正史)에서 소홀히 하는 삶의 이면을 들려주는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처럼 흥미로운 소품도 있다.

이 책은 언뜻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보였다. 신기한 서양 문물이 조선에 언제, 어떻게 처음 들어왔는지 파헤치면서 그에 얽힌 황당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가벼운 읽을거리라 여겼던 것이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달랐다. 안경과 망원경, 자명종, 거울, 양금(洋琴) 다섯 가지 품목을 골라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를 살핀 진지한 책이었다. 물론 전래 경위며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지만 이색적인 이야깃거리로만 삼기엔 문제의식이 도드라진다.

망원경을 보자. 서양에서는 천체 관측에 쓰이며 새로운 세계관을 여는 데 큰 몫을 했고, 나침반과 더불어 대항해를 가능케 해 유럽 제국주의가 지구촌을 석권하는 데 숨은 공신이었다. 그런데 조선은 1631년 청나라를 통해 이를 입수했지만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영조는 규일영(窺日影)이라 이름 붙은 천리경을 부숴버렸다. 태양(日)을 엿보는(窺) 것은 곧 임금의 의도를 엿보는 무엄한 짓이란 이유에서였다.

이에 영의정 김재로는 "성상께서 하교하신 바가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숙종 때인 1712년 조선과 청이 국경을 정할 때 청이 측량한 결과를 바탕으로 해야 했다. 함경도 관찰사 이선부가 천리경(망원경)이 있으면 좋겠다며 조정에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조정에선 국경을 정하는 중요한 일에 어떻게 천리경을 믿을 수 있느냐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기 말 명에 사은사(謝恩使)로 다녀온 김성일(金誠一)이 처음 썼다는 안경은 달랐다. 왕으로는 숙종이 처음 썼다는데 17세기부터 양반의 필수품이 됐고, 19세기에는 전 계층으로 퍼졌다. 경주 인근에서 수정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주로 북경에서 들어왔다. 이익은 안경의 유래를 설명한 '애체(雲愛雲逮)'라는 글을 남겼는데 이는 구름이 성한 모양, 무언가 잘 보이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안경의 애칭이었다.

실학자 이수광도 1614년 〈지봉유설〉에서 "노년에 책을 보면 작은 글자가 크게 보인다"고 안경 예찬론을 폈다. 지은이는 정선, 최북, 정약용 등 대표적인 '안경인'을 꼽으며 18세기 후반 학계에 엄청난 분량의 저술이 쏟아진 것에 안경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다섯 가지 서양 문물의 수용 양태를 살핀 지은이는 각기 다른 수용 양상, 제작 양상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원리에 대한 조선의 무관심'이었다고 결론짓는다. 물건 이면에 담긴 과학적 원리, 즉 광학적·화학적 지식 등을 자세히 탐구하지 않은 결과 이른바 '근대화'에 뒤지고 말았다는 성찰이다. 꼼꼼하고 풍부한 자료가 뒷받침된 이 책이 단순한 흥밋거리를 뛰어넘는 이유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김명관 지음 │ 휴머니스트 │ 347쪽 │ 1만8000원

 

·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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