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개인용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한 지 어느덧 30년 가까이 됐다. XT 컴퓨터를 거쳐 AT 286, 386, 486, 펜티엄 등을 두루 거치는 동안 저장장치도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4.2인치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3.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했다. 디스켓에 목록 라벨을 붙이고 나름의 분류 기준에 맞춰 자료를 정리했는데, USB(휴대용 소형 저장장치)가 보편화되면서 추억 속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사할 때면 가끔 추억의 3.5인치 디스켓을 확인해보긴 하지만 요즘에는 아예 열어보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중 대부분은 USB로 옮겨놓았지만 분명 미처 옮겨놓지 않아서 깊은 어둠 속에 하염없이 묻혀 있는 문서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USB만 하더라도 그렇다. 플로피디스크보다 크기도 작고 휴대하기도 좋은 이동저장장치지만,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바람에 그 수효도 꽤 여럿이다. 새것이 나올 때마다 옮겨 저장도 하고 별도의 외장 하드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천성이 게으른 탓인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최근에 어떤 자료를 찾으려고 이런저런 USB를 뒤졌다.
난해한 암어처럼 찾으려는 자료는 제 몸을 숨긴 채 나오지 않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흔적들을 훑어보게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문서들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았음은 물론 중복된 것들도 많아 원본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질서정연하게 살지 못한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슬며시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시작을 해놓고 마무리하지 못한 글들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계획서만 있는 논문 아이디어도 있었고, 첫 단락만 쓰다 만 잡문들도 널브러져 있었으며, 80%쯤 진행하다 출판에까지 이르지 못한 책 원고도 있었다. 대부분 이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들일 터다.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작업하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다부지게 실행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일이 끼어들었고, 이 일만 먼저 처리하고 바로 이어가자 생각했을 테고, 그러다 또 다른 일에 치였을 수도 있다. 일일이 다 복기할 수조차 없는 많은 순간들이 희미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여하튼 중도에 그친 아이템들이 마치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처럼 너저분하게 숨죽이고 있는 형국이었다. 늘 시간에 쫓기며 허겁지겁 살아온 지난 흔적들을 확인하는 심사는 처연하기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먹을 갈아 신문지 위에 붓글씨 연습을 하다가 한 획이라도 틀리면 거기서 멈추고 다시 시작하곤 했다. 가친께서 그 모습을 보시더니 조용히 한 말씀 건네셨다. 한 획이 틀렸더라도 일단 끝까지 써보라고, 그러면 아까 실수한 그 획 때문에 전체가 얼마나 어떻게 잘못되는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그 대목에서 실수를 덜하게 된다고.
그냥 지나가는 말씀처럼 하신 얘기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렇겠다 싶었고, 꼭 그렇게 실행하리라 조용히 다짐했었다. 끝까지 가보는 것, 끝을 확인해보는 것의 중요성을 막연하게나마 새겼던 것 같다. 투수가 자신이 던진 공의 끝을 잘 볼 수 있다면 좋은 투수이고 더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뒤에 들었다.
물론 마음먹은 대로, 뜻한 바대로 이루며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쓰레기를 너무 많이 생산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나가고, 쓰레기 더미에서 옥석을 찾아나가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움의 쓰레기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조용히 해본다. 가친께서 내주신 숙제를 아직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어리석은 자식의 부끄러움을 언제나 줄일 수 있을지….
글 ·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 201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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