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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서로공감호

[서로공감] 다른 세상으로 훌쩍, 여행의 즐거움이란

허투루, 허튼짓, 되는대로….

모든 사람이 무언가에 쫓기듯 사는 요즘 세상에서용납될 수 없는 말들이다. 무릇 모든 행위에는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내게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로워야 한다. 한데 세상사가, 적어도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쓸모없음은 과연 쓸모없을까.

철학적 냄새가 풍기는 제목의 이 책은 뜻밖에도여행 에세이다. 1953년, 스위스 출신의 니콜라 부비에와 티에리 베르네가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각각 작가와 화가인 두 청년이 소형 피아트를 타고 1년 넘게 동으로, 동으로 달려 아프가니스탄의 카이바르 고개까지 가며 그 여정을 글과 그림으로 담은 책이다(이들은 인도를 거쳐 지금의 스리랑카인 실론까지 간다).

한데 여느 여행 에세이와 여러모로 다르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빼어난 경치도, 자상한 정보도, 속 깊은 깨달음도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 드러내지 않는다.

"여행은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곧 증명해주리라. 여행자는 자기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는 여행이 여행자를 만들고 여행자를 해체한다."

책을 두어 쪽 넘기고 만난 구절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불현듯, ‘그냥’ 떠났다. 인도로 간다는 목표만 가진 채. 일정도 내키는 대로다. 돈이 떨어져서 혹은 겨울을 견디느라 한곳에서 몇 달씩 머무는가 하면, 숨넘어가는 차를 하루 종일 몰며 사막을 건너는 식이다. 평온하다 못해 심심하다. 한데 매력적이다. 담담한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책 곳곳에서아름다움과 지혜를 만날 수 있다. 물론 보기를 원하는 이만 그럴 수 있다.

"새벽 날씨는 눅눅하면서도 푸근했다. 흑해 위에 펼쳐진 하늘 가장자리를 따라 담황색 빛이 뻗어 있었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들 사이에서 수증기가 분주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풀밭에 드러누웠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 있다는 게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여행의 즐거움이 손에 잡히는 대목이다.

"돈이 돌고 돈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돈은 위로만 올라갈 뿐이다. 제물로 바쳐진 고기 냄새가 세력가들의 콧구멍까지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운 성향에 따라 상승하는 것이다." 경찰에서 장관까지 이어지는 부패의 고리를 두고 부비에가 하는 말이다.

갈피마다 여유와 통찰을 담은 책이니 마땅히 읽는 법도 달라야 한다. 일단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한 번 달린다. 그러면서 도그지어(Dog’s Ear)를 남긴 뒤 생각날 때마다 찬찬히 잡히는 대로 살펴야 제대로다. 도그지어란 마음에 든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 책면의 모퉁이를 접어놓은 모양이 개의 귀와 비슷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렇게 하면 이 책은 수많은 ‘개 귀’가 달려 두툼해질 값진 책이다.

"세계는 마치 물처럼 잔물결을 일으키며 당신을 통과하고, 당신은 잠시 물 색깔을 띠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당신이 당신 가슴속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그 텅빈 공간 앞에, 영혼의 불충분함에 다시 당신을 세워둔 채 물러난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그렇다. 세상 자체가 삶의 교과서다. 우리가 제대로 쓴다면.

 

세상의 용도 

세상의 용도
니콜라 부비에 글 | 티에리 베르네 그림 | 이재형 옮김 | 소동 | 672쪽 | 1만8000원

 

글· 김성희(북칼럼니스트)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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