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조선 궁궐·왕릉 이야기] 평소엔 서온돌, 임금과 합궁할 땐 동온돌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은 광화문부터 시작하여 뒤쪽으로 한 줄로 늘어서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적으로 설계한 것이지요. 궁은 임금이 통치 행위를 하는 치조와 사생활 공간인 연조, 관청이 있는 외조로 나뉘어 있습니다. 관청들은 주로 궁 바깥에 있지만 업무 성격상 임금과 자주 만나야 하는 관리들의 집무실은 궁 안에 둔 것입니다.

▶ 1 사정전은 임금이 집무하던 편전이다. 사정전 양옆엔 임금이 독서를 하거나 연회를 베풀던 천추전과 만춘전이 자리잡고 있다. 2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윤상구
임금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은 편전과 침전입니다. 근정전 같은 정전은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만 쓰이고, 평소 임금이 집무하는 곳은 편전입니다. 대전(大殿)이라고도 불리는 침전은 임금의 숙소입니다.
근정전 바로 뒤에 있는 사정전(思政殿)은 편전입니다. 이곳에서 임금은 어전 회의나 경연 등 공식 업무를 처리했지요. 사정전 앞마당은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했던 사육신을 국문했던 곳입니다. 1456년 세조는 이곳에서 성삼문(成三問) 등을 국문했지만 그들 사육신은 임금과의 대화조차 거부하며 의연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정전 양옆에 있는 천추전(千秋殿)과 만춘전(萬春殿)은 임금이 독서하고 편하게 나랏일을 의논하거나 조촐한 연회를 베풀던 비공식 업무 공간입니다. 두 건물 지붕 아래 벽돌로 짠 합각에는 좌우로 ‘편안할 강(康)’ 자와 ‘편안할 녕(寧)’ 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강녕’을 대단히 중시했습니다. 오복은 장수, 부귀, 강녕, 유호덕(攸好德 : 덕을 베품), 고종명(考終命 : 편안한 죽음)인데, 가운데 있는 강녕을 택하면 양쪽에 있는 나머지는 다 포함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정전의 앞 행각은 임금의 사유재산을 보관했던 내탕고입니다. 문설주에는 천자문(千字文)의 글자 순서인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집 우(宇), 집 주(宙), 넓을 홍(弘), 거칠 황(荒), 날 일(日), 달 월(月) 자를 딴 창고 이름이 붙어 있지요. 천자고(天字庫), 지자고(地字庫) 같은 이름이 붙은 창고가 10개 있는데 이 글자들로 순서를 나타낸 것입니다.
사정전 뒤에 있는 강녕전부터 임금의 사생활 공간인 연조(燕朝)가 시작됩니다. 강녕전은 임금의 침전입니다. 그런데 진짜 강녕전을 보려면 창덕궁에 가야 합니다. 1917년 창덕궁 화재 후 다시 지을 때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가 희정당(熙政堂)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경복궁의 중궁전인 교태전(交泰殿)도 그때 헐어다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으로 지었습니다.

▶ 강녕전 내부는 벽이 없고 문으로 구분되어 문을 모두 트면 하나의 공간이 된다. 임금의 방을 중심에 두고 주변 방의 상궁들이 24시간 내내 임금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윤상구
강녕전 지붕 위에는 용마루(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하얗게 바른 수평 마루)가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왕비의 처소인 중궁전 지붕에는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습니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데 왕비의 처소에 용이 둘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지요. 하지만 침전에 용마루가 없는 곳은 강녕전뿐입니다. 강녕전 내부는 벽이 없고 문으로 구분되어 있어 문을 모두 트면 하나의 공간이 됩니다. 임금의 방을 중심으로 주변 방에서 지밀상궁이 24시간 내내 임금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강녕전 뒤에는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양의문(兩儀門)이 있습니다. 양의문은 둔중한 다른 전각의 문과 달리 여섯 짝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힘이 부족한 여자들이 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배려하여 만든 것이지요.

▶ 교태전은 왕비의 편전 겸 침전이다. 임금과 왕비가 합궁하는 방이 있다. ⓒ윤상구
교태전은 왕비의 편전 겸 침전입니다. 왕비는 평소 서온돌에서 지내고, 동온돌은 임금이 왔을 때 합궁하는 방으로 썼습니다. 임금과 왕비가 합궁하는 날은 오늘날의 기상청 격인 관상감이나 대신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합궁하면 안 되는 조건도 많았지요. 일단 뱀날, 호랑이날, 제삿날은 피했고 비, 천둥, 안개, 바람, 일식, 월식 등 일기가 곱지 않은 날도 피했습니다. 거기에 임금의 마음이 언짢은 날도 기피했으니, 합궁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 후계자 얻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왕비는 교태전 뒤쪽으로 붙은 건순각(健順閣)에서 출산을 했습니다. ‘건순’은 강건과 유순을 합한 말로 강건한 왕자, 유순한 공주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 아미산은 경회루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으로 만들었다는 인공산이다. 왕비의 처소가 외부 시선에 노출되는 걸 막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윤상구
건순각 앞에 있는 아미산은 경회루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으로 만든 인공 산입니다. ‘아미’는 미인의 눈썹을 말하는데, 여기서 미인은 왕비를 가리키지요. 일부러 산을 만들어놓은 이유는 백두산 정기를 이어받기 위해서입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북한산, 북악산을 거쳐 아미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또 왕비의 처소가 외부 시선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아미산은 경복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바깥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왕비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꾸민 시설이지요. 아미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네 층의 꽃 계단에 있는 굴뚝들입니다. 굴뚝의 몸체는 육모인데 이는 하늘과 땅,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육합(六合), 즉 온 세상을 상징합니다. 거기에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邪)와 장수를 기원하며 십장생을 비롯한 여러 문양을 새겨 넣었지요. 모란은 부귀, 국화는 은일, 매화는 맑고 청결함을 뜻하고, 구름과 학은 장생, 봉황은 상서로움, 박쥐는 복, 해치와 불가사리는 벽사를 의미합니다.
또 신선 세계를 상징하는 연못도 3개나 있습니다. 그런데 땅을 파서 만든 것이 아니라 돌함에 물을 담아놓고 연못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함월지(涵月池)는 달을 머금은 호수, 낙하담(落霞潭)은 노을이 지는 연못, 석지(石池)는 달나라 월궁을 상징합니다. 석지 가장자리에는 달의 정령이라 여겨진 두꺼비 4마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아미산을 이렇게 공들여 만들었지만 그곳에 갇힌 듯 살아야 했던 왕비의 삶은 가련하게만 여겨집니다.
황인희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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