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서로공감] 도가의 가르침을 곱씹다

며칠 전 지하철 안에서 ‘빼子’를 만났다. 물론 실제 인물 이야기는 아니다. 제법 근엄한 얼굴로 다이어트 광고 포스터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공자, 맹자 하는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의 ‘권위’에 기대보려는 유머러스한 광고여서 우스우면서도 반가웠다.

우리는 ‘子’에 약하다. 한 수 접어준다고나 할까. 공맹(孔孟) 말고도 노자, 장자, 순자 등 유익하고 뜻깊은 말씀을 한 ‘자’ 자 돌림의 위인들이 수두룩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데 이 중 ‘열자’는 좀 예외에 속한다.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했지만 어지간한 이들 아니면 무명에 가깝다.

유학을 숭상해온 조상들 탓이 크다. 열자는 무위자연을 내세웠던 도가(道家)의 인물이어서 이른바 동양 인문학의 주류에서는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가의 인물들이 대체로 그렇듯 행적이 명확하지 않다. 춘추시대 사람이라는데 생몰 연대나 행적이 밝혀지지 않아 실존 인물 여부도 논란의 대상이다. 당연히 〈열자〉의 실제 저자인지도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서 책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 장자의 〈남화진경(장자)〉과 더불어 도가의 3대 경전 중 하나로 꼽힌다. 당연히 ‘좋은 말씀’이 허다하다. 그런데 〈논어〉, 〈맹자〉 등 사서삼경과는 읽는 맛이 다르다. ‘이야기’가 가득한 덕분이다. 열자는 세상의 원리인 천명(天命)을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지를 흥미롭고 쉬운 이야기를 들어 보여준다.

“가장 좋은 것은 비우는 것이다. 고요한 태도로 비우고 살 수 있다면 삶을 터득한 것이요, 다투어 취하려 가지고만 한다면 처하는 법을 잃은 것이다.” 뭔가 심오한 원리를 담아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 대신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기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태어날 때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서는 태어남을 알지 못한다. 올 때는 갈 것을 알지 못하고, 갈 때는 올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너짐과 무너지지 않음에 관해 내 어찌 마음에 담아두겠는가?”라고 하면 어떨까.

이건 지나친 걱정이란 뜻으로 흔히 쓰이는 ‘기우(杞憂)’에 얽힌 이야기인데 이 책에서는 번지르르한 말 바꾸기를 꼬집는 ‘조삼모사(朝三暮四)’, 뜻이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고 격려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 등 우리에게 친숙한 에피소드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읽기 나름이다. 우선 사자성어를 들먹이며 문자 속을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 지식을 얻기에는 안성맞춤인 책이다. 이미 장자 등 후대 사상가들의 저술에 〈열자〉에 실린 이야기가 다수 인용됐을 정도이니 말이다. 좀 더 깊이 읽자면 도가의 가르침을 곱씹어보는 ‘교재’로 읽을 수도 있다. “삶을 즐기는 자는 가난하지 않고, 몸을 편안히 하는 자는 재물을 불리지 않는다” 같은 말들이 이어지니까.

번역이 매끄러워 쉽게 읽히지만, 내용은 만만치 않으니 단번에 슥 읽을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아껴가며 읽을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 매력을 느낀다면 이참에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에 도전해볼 일이다. 이 책도 그 기획 시리즈 중 하나이니.

 

열자

열자
열어구 지음 | 정유선 옮김 | 동아일보사 | 344쪽 | 1만8000원

 

·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16.06.20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