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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김창엽의 생활정보] 알록달록 가을 과일, 진화의 산물

"대추가 익으니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글쎄, 연한 초록색이어도 맛이 없진 않은데, 아무래도 고동색으로 변한 게 좀 더 구미가 당기긴 하네요."

수확의 계절 가을, 마당 한쪽에 자리한 대추나무 열매를 두고 부부가 한가로운 대화를 나눈다. 하루가 다르게 들판이 누렇게 변해가는 가운데 요즘 감이며 사과, 배들이 특유의 색깔을 한층 뽐내고 있다.

빨갛거나 노란 가을 과일의 색깔은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미각까지도 자극한다. 왜 과일의 색깔은 아름답게 느껴지고, 게다가 구미까지 당기게 할까? 사과며 배, 대추, 감 등이 가을에 익어가는 건 문자 그대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울긋불긋 낙엽이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군침이 고이게 하는, 또 때로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예쁜 과일의 색깔을 식물학자들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로 여긴다. 어른 엄지손톱보다 좀 더 큰 열매부터 주먹만 한 과일까지 가을 풍경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과실을 달고 있는 나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여타 식물들에 비해서도 자손을 퍼뜨리는 데 불리한 수형이나 구조라는 것이다.

 

 과일

▶군침이 고이게 하는, 또 때로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예쁜 과일의 색깔을 식물학자들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로 여긴다. ⓒshutterstock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내기 쉬운 잡초와는 달리 과일은 덩치도 큰 편이고 열매도 무거워 누군가가 ‘따주지 않는다면’ 자손 번식이 쉽지 않다. 그러니 소중한 씨앗을 품고 있는 과일들로선 눈에 잘 띄는 게 생존을 위한 최선의 수단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포함해 씨앗을 이리저리 옮겨줄 수 있는 동물들의 눈길을 끌려면 먼저 색이 밝고 선명해야 한다. 노란 감이나 빨간 사과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색깔만으로는 충분히 어필할 수 없다. 색깔에 걸맞게 맛도 탁월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든 동물이든 먹고 또 따먹기를 반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멋도 있고 맛도 있게 느껴지는 과일의 색깔은 수천 혹은 수만 년 진화의 결과물인 셈이다. 동시에 과일은 이를 먹는 동물들의 입장에선 더없이 훌륭한 영양원이다. 과일을 매개로 동물과 식물이 터득한 일종의 공존 메커니즘이다.

가을이 익어가면서 과일 색깔이 변하는 화학적, 생물학적 기전은 소상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에틸렌 기체 같은 자연 발생 화학물질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자극하고, 이 때문에 이런저런 생체 효소가 만들어지면서 과일을 익게 한다는 정도의 사실은 규명됐다.

대부분의 과일은 익기 전에는 녹색 계통으로 색깔이 비슷하다. 모과, 대추, 사과, 감 등이 다 공통적이다. 이는 잎사귀와 마찬가지로 엽록소 성분이 과육과 껍질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이 깊어지면 엽록소는 파괴 혹은 분해되고, 특정한 색소들이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당근에 풍부한 카로티노이드 같은 색소가 많아지면 노란색 혹은 오렌지색이 돋보이고, 안토시아닌 계통 색소가 축적되면 빨갛거나 파란 색이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변화는 껍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과일 속, 즉 과육은 초기에 전분 계통이 풍부하지만 이 역시 생체 효소의 작용으로 단당류 같은 것들로 변화한다. 녹말보다 포도당이 더 달착지근하므로 과일이 익으면 당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껍질 색이 확연히 변하지 않아도 오도독 혹은 아삭 씹으면 제법 맛이 나는 과일들은 같은 맥락에서 이미 과육의 상당 부분이 단당류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을을 아름답게 하는 과일의 비결은 그 색깔이 자아내는 멋과 맛 때문은 아닐까.

 

글· 김창엽(자유기고가) 201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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