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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영화 ‘태양 아래’ 진미의 눈물, 우리가 닦아 주어야 한다

학교로, 체육관으로, 무용연습실로, 운동장으로, 거대한 동상 앞으로 옮겨 다니며 촬영을 하던 막바지에감독이 물어본다. "소년단 입단 후 스스로의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해?"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혹시라도 아이가 자신의 질문이 어려워 그런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이렇게 바꾸어 말한다.

"좋은 것을 생각해보라"고. 돌아온 대답은 "잘 모릅니다. 그런 거 잘 모르겠습니다"였다. "그럼 아는 시(詩) 있으면 외워봐." 한참을 머뭇거리던 아이는 소년단 입단 선서문을무표정하게 소리 높여 외운다. "나는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세워주시고, 위대한 김정일 대원수님께서 빛내주시며…." 그 모습이 가슴 아프다.

북한 어린이들이라고 다를까. 해맑은 눈을 가지고 태어났고, 순수한 동심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독재와 사상교육이 빼앗고 가로막아버렸다.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것들이 살아 있음을. 때론 수십 권의 책과 수백 명의 증언보다 한 편의 영화, 그것도 ‘거짓’의 의도를 가진 작품이 역설적으로 ‘진실’을 날카롭게묘사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가 그렇다.

 

영화 태양 아래

▶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는 여덟 살 진미가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 축하 무대에 서는 과정을 담으며 이면에 숨겨진 북한의 민낯을 보여준다.

 

강요된 찬양과 행복
연출된 ‘겉’이 아닌 북한의 진짜 ‘속’ 모습 
  

북한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만든 러시아 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태양 아래’는 겉과 속을 동시에 드러낸, 나열된 문장보다 그 행간을 읽어가는 작품이다. 북한 당국이 건네준 각본대로 찍은 문장은 여느 북한 선전물처럼 ‘위대한 태양’으로 떠받들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우상화와주민들의 동원되고 강요된 행복과 찬양 일색이다. 그것은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태양 아래’는 그 연출된 ‘겉’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마치 메이킹 필름(영화 제작 뒷얘기를다큐멘터리로 엮은 필름)처럼 그 겉을 찍는 과정에서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속’을 몰래몰래, 말없이 행간에 담았다.

촬영을 위해 동원된 사람들, 지하철 플랫폼에 쪼그려 앉은 사람들,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 창밖에 걸린 낡은 내복, 고장 난무궤도전차를 밀고 가는 행렬, 지루한 연설과 강연을 참지 못해 조는 아이, 존경의 상징인 김일성과 김정은 동상 앞에 바친 꽃송이들을 쓰레기 취급하듯 수레에 담는 여자. 이런 주변 풍경들이야말로 ‘태양 아래’를진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그 속은 결국 북한이 이 작품을 통해 자랑하고자 신경을 곤두세우고 준비한 ‘태양 아래 사는 평범한 가족의 행복한 일상’에서도 감출 수가 없었다. 여덟 살 소녀 이진미에게 촬영은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북한 관계자가 옆에서 "집에서 하던 대로 하라"고 재촉하지만, 진미에게 그 말은 이상하고 어색했다. 부모님의 직업, 사는 집, 먹는 음식, 갑자기 닥친 광명성절과 태양절, 소년단 입단식에서의 주인공 역할을 한마디 불평 없이 받아들이는 아이는 표정도 감정도 잃어간다. 계획된 연기가 아닌 그 표정과 감정이 바로 ‘속’이다.

진미와 그 가족의 모든 일상이 강요와 조작임을 아는 순간,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을 카메라가 침묵의 영상으로 잡아내듯, 진미 역시 소리 없는 눈물로 그것을 보여준다. 진미 아버지와 어머니, 이 작품을 위해 일상이 아닌 특별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로봇과도 같은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안다. 굳이 ‘태양 아래’를 보지 않아도, ‘태양 아래’가 북한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이 "평소 집에서 생활하던 대로"가 아니라 조작되고 연출된 거짓이라고 폭로하지 않아도, 진미가 ‘태양 아래’ 때문에 호된 춤 연습에 힘이 들어 끝내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지금 북한의 상황과 그곳 동포들의 삶이 어떤지를. 굳이 만스키 감독처럼 잔인하게 진미에게 "너, 행복하니"라고 물어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할 필요도 없다.

 

영화 태양 아래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 스틸 컷. 

 

진미의 눈물,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진실
상업적 이익보다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 제공 중요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사실, 진실이다. 그것을 외면할 때 다큐멘터리는 진실을 위장한 거짓이 된다. ‘태양 아래’는 거짓을 용기 있게 거부하면서 사실을 소리 높여 외치지 않고 담담하게 담았다. 그 진실이 비록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 해도, 새삼 진솔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제3자의 정직한 눈으로 포착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관한 한 우리는 이념의 잣대부터 들이대려 한다. 그러나 진실은 이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이념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미국의 언론인 파하드 만주는 이를 ‘이기적 진실’이라고 했다. 사실이라는 증거 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입맛에 맞는 정보나 현실만 받아들이는 진실스러움을 말한다. 어쩌면 ‘태양 아래’는 우리의 이런 태도에 대한 따가운 질책인지도 모른다. 진미의 눈물 앞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별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 내거나 거짓에 동조하는 모순을 만들어낼 뿐이다. 진미의 눈물에는 사상도, 정치적 의도도, 강요도, 계산도 없다. 그 눈물이야말로 가능한 한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닦아주어야 할 진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눈물에 관심도, 그것을 확인할 기회조차 넉넉하게 갖지 못하고 있다. ‘태양 아래’는 지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국 오락영화의 틈바구니에서 극장 한 귀퉁이로 밀려난 찬밥 신세이다. 그나마 상영시간도 징검다리여서 편하게 가서 볼 수도 없다. 오락영화 한 편이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의 70%를 차지해버리는 현실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로 말미암아 갈수록 영화 소비의 편식과 왜곡이 심해지는 것은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도, 국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데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상영의 다양성이야말로 제작의 다양성을 유도하는 원동력이다.

 

영화 태양 아래 관람하는 박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5월 5일 영화 ‘태양 아래’를 관람한 뒤 “꿈을 잃고 어렵게 살아가는 북한 어린이들을 우리가 보듬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많은 국민이 영화를 보셔서 북한이 변화하도 록 앞장서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물론 누구보다 관객들의 역할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멀티플렉스로 스크린을 독점하다시피 한 대기업들 역시 오로지 상업적 이익에만 집착해 작은 영화, 의미 있는 영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문화기업의 사회적 책임이기 때문이다.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 / 사진 · 영화사 날개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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