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연전에 여든의 나이로 세상을 뜬 윌리엄 사파이어라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이 있다.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그는 43세에 뒤늦게 뉴욕타임스(NYT)로 영입돼 1973년부터 2005년까지 만 32년간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요즘 유행하는 ‘예쁜 얼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루키즘(Lookism : 외모지상주의)’은 그가 만든 신조어다. 세계 언론계 최고 권위인 퓰리처상도 받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생의 에너지를 불살랐고 다채롭게도 살았다. 시러큐스대학을 중퇴한 뒤 스무 살에 뉴욕헤럴드트리뷴에 입사해 신문기자와 유럽지역 방송 특파원을 지냈다. 이어 사업가로 변신해 홍보 대행사를 직접 운영했다. 자신의 고객 중 한 명이던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주방을 공개해 모스크바에서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과의 ‘주방 토론회’를 성사시켰다. 넬슨 록펠러의 뉴욕주지사 선거운동 등에 참여해 직접 정치에 뛰어든 그는 닉슨 대통령 시절 백악관 연설 담당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어 43세에 NYT의 부름을 받아 언론계에 복귀했다.
사파이어는 직업인으로서 엄청난 ‘생산성’을 자랑한다. NYT 칼럼니스트로서 1973년부터 2005년까지 매주 2개꼴로 3000개가 넘는 칼럼을 썼다. 바쁜 와중에 자신의 백악관 시절을 정리한 회고록과 4권의 소설도 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꼴통 보수주의자. 그럼에도 진보 매체인 NYT는 은퇴 특집으로 한꺼번에 그가 쓴 4개의 쿼텟(Quartet) 칼럼을 싣는 특별대우를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에너지를 불살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NYT에 쓴 마지막 칼럼 제목인 ‘절대 은퇴하지 마라(Never Retire)’라는 주장을 스스로 실천한 사람이다. “중년 이후에는 재충전과 호기심,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며 ‘변신을 통한 건강한 삶’을 주장했다.
대개 한국의 경우 은퇴를 하면 지레 기가 죽어 산을 찾거나 적당히 편한 자리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면에서 속눈썹이 날리도록 바빴던 사파이어의 삶은 주목된다. 우리는 너무 빨리 조로(早老)하는 경향이 있다. 속도감이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가져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 도가 지나친 점이 있다. 사탕 하나를 입에 넣더라도 끝까지 빨아 먹는 한국인은 드물다. 서너 번 빨아보다가 이내 우두둑 부숴 먹어야 성이 차는 민족이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보자. 큰맘 먹고 산 책도 앞부분은 손때로 새까맣지만 뒤로 가면 깨끗하다. 그 옛날 헌책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은 으레 앞만 약간 사용한 흔적이 있을 뿐 뒤로 갈수록 깨끗한, 새 책 같은 헌책이었다. 쉬이 끓고 쉬이 식는 냄비 근성을 지닌 민족이라는 비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렇게 급한 한국인의 성정은 압축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도 남겼다.
문제는 이 땅에서 칠순을 넘기고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인물은 정치인을 빼고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능력 없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능력이 출중하고 건강한 사람조차 미리 겁부터 먹고 인생 2모작에 용기를 내어 올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풍요로운 식생활과 높은 의료 수준 덕분에 청년 같은 장년들이 서울 거리에 넘치고 있다. ‘지공대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층)’ 어르신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러나 능력이 있건 없건 9988(99세까지 팔팔하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무조건 뭐라도 해야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여든 살에 <파우스트>를 완성했고 파블로 피카소나 파블로 카잘스 같은 인물도 칠순 넘어서까지 맹렬한 예술 활동으로 명성을 떨쳤다. 노익장이 넘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글 ·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언론학·매체경영))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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