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명저로 읽는 과학세상] 양자역학 창시자의 회고록 <부분과 전체>
플라톤의 ‘대화’ 편을 떠올리는 양자역학 창시자의 회고록
부분과 전체

하이젠베르크의 이 책은 형식도 독특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록을 떠올리게 한다. 하이젠베르크도 등장인물들과 대화체로 책을 끌어간다. 수십 년 전 있었던 대화를 기억하고 복원해낸다.
2016년 7월 공연한 ‘코펜하겐’이란 연극을 보지 못한 게 아쉽다. 페이스북의 과학 그룹 회원이 과학연극을 단체로 보러 가자고 제안한 걸, 무시했다. 공연은 이제 막을 내린 지 오래다. 그런데 책 <부분과 전체>를 다 읽고 나니, 그때 보지 않은 게 속 쓰리다. <부분과 전체>의 저자 하이젠베르크가 연극 ‘코펜하겐’의 주인공이기 때문.
연극의 원작자가 영국 소설가 마이클 프레인이라는 걸 알고 나니 더 쓰리다. 그의 소설 <곤두박질>을 언젠가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마이클 프레인은 과학을 잘 이해하는 작가(영국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자서전 하권에서 언급)라고 얘기된다. ‘코펜하겐’ 원작을 읽어보려고 찾았지만 한국어 번역판은 없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대본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사진 오른쪽)와 그의 스승 닐스 보어.
양자역학 창시자의 새로운 과학탄생기
<부분과 전체>는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의 1969년 회고록. 하이젠베르크는 193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다. 불확정성 원리 연구와 양자역학 창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연극 ‘코펜하겐’은 하이젠베르크, 닐스 보어와 부인 마그레테 보어,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닐스 보어(1885~1962)는 덴마크 물리학자로 19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박사후연구원인 하이젠베르크를 코펜하겐에서 지도했다. 연극은 “왜, 41년 9월에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찾아 코펜하겐에 왔는가”라는 마그레테 보어의 대사로 시작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당시 나치 독일의 핵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핵 개발 관련 가슴앓이를 하다가 덴마크 수도로 옛 스승을 찾아간다.
대화는 하이젠베르크가 기대한 대로 풀리지 않았다. 반갑게 만나 보어의 집 벽난로 앞에 마주 앉았으나, 나치 점령하에서라 그런지 얘기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연극 속에서 대화가 허공을 맴돌자 두 사람은 뭐가 잘못됐지 하며, 첫 장면부터 대화를 다시 시작해보자고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보어 집 초인종을 누르는 장면을 연극은 3, 4회 되풀이하는 식으로 풀어나간다. 그때마다 보어 부인 마그레테는 “왜, 41년 9월에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찾아 코펜하겐에 왔는가”라고 읊조린다.
연극은 나치 과학자로 비판받기도 하는 하이젠베르크가 히틀러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 진력했느냐를 규명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원작자는 하이젠베르크도 무엇을 하러 보어를 찾아갔는지 확신하지 못한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사람이란 때로는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모를 수 있다는 걸 작가는 드러내려 하며, 그건 바로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에 도입했던 불확정성 원리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과학연극이 아니라 과학사의 유명한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것이 ‘코펜하겐’의 진면목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스승 보어와 함께 만든 새로운 물리학인 양자역학은 원자 세계의 운동법칙을 밝히고자 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의 법칙을 알아내려 한다면,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그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파고든다.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언어로 유명하다. 전자의 경우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달리는 차량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운동하는 물체의 두 가지 값을 동시에 얻을 수 없고, 확률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양자 세계의 기묘한 특징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라고 표현했다. 불확정성 원리는 보어와 함께 1927년에 내놓은 양자역학 이론 ‘코펜하겐 해석’의 축 중 하나다. 당시 보어가 살던 코펜하겐은 양자역학의 출생지였다.
아인슈타인, 보어, 슈뢰딩거, 파울리, 폰 바이츠제커와의 흥미로운 대화
하이젠베르크의 회고록 <부분과 전체>는 여러 개 층위를 갖고 있다. 연극 ‘코펜하겐’ 원작자가 주목한 대로 나치 과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얼굴을 볼 수도 있다. 필자는 양자역학 탄생 주역이 기록한 ‘양자역학 탄생사’라는 측면이 제1 가치라고 본다. 이 때문에 서울대에서 신입생에게 권하는 100권의 책 중 하나로 꼽았고,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센터에서 과학고전 50선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과의 교류기란 독법도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아르놀트 조머펠트, 볼프강 파울리, 폴 디랙,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의 형) 등 20세기 초중반 물리학의 8000m급 최고봉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들의 물리학(‘부분’), 그리고 물리학을 둘러싼 경계(‘전체’) 관련 대화가 흥미롭다. 국경을 넘어 진리를 찾기 위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과학 커뮤니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부분과 전체>는 하이젠베르크와 그의 스승 보어의 우정을 기록한 책이라는 얼굴도 갖고 있다. 역사상 많은 사제가 있었지만 스승에 대한 이 정도 헌사도 흔치 않아 보인다. 책은 과학철학서란 얼굴도 갖고 있다. 양자역학은 새로운 물리학이었다. 양자역학 아버지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어떻게 연구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거시 세계를 연구하는 아인슈타인과 이 문제를 둘러싸고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충돌했고, 독일 최고의 여성 칸트 철학자로부터 도전을 받기도 했다. 이 과학철학 책이라는 얼굴이 <부분과 전체>의 가장 고급스러운 맛이 아닐까 싶다. 여러 층위를 갖고 있는 책이 좋은 책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이 책은 형식도 독특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록을 떠올리게 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지인들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하이젠베르크도 등장인물들과 대화체로 책을 끌어간다. 수십 년 전 있었던 대화를 기억하고 복원해낸다. 심오한 양자물리학과 과학철학을 말하지만 대화체여서 그리 어렵지 않다. 글보다 말이 더 이해하기 쉽다.
하이젠베르크 대화 편 중 돋보이는 부분은 이렇다. “원자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고 한 보어와의 1922년 대화 편, 아인슈타인이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이론”이라고 말해 하이젠베르크가 행렬역학을 발견할 수 있는 영감을 준 1926년 대화 편, 양자 도약을 둘러싼 보어와 에르빈 슈뢰딩거(193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1926년 격론 편.
양자역학 아버지들과 아인슈타인이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격돌한 이야기는 책에서 살짝 언급하고 넘어간다. 보어는 양자 세계는 확률의 세상이라 말했고,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양자물리학자들을 비판했다. 이 에피소드는 회의 참석자들에 의해 내용이 충분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위대한 물리학자를 일반인은 부러워한다. 나도 그렇다. 이 천재의 삶, 평탄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10대에 겪은 뮌헨 내전부터, 나치 과학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한 1940년대 초 핵 프로그램 연구,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가 핵무장을 검토할 때 앞장서 반대한 정치 행동 등. 삶은 투쟁이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삶을 뚜벅뚜벅 살아나갔다.
최준석 | 주간조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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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