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고 남은 것은 재뿐인 것 같은 번아웃(Burn out)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일반적으로 번아웃은 일에 지친 어른들이 무기력과 탈진 증세를 보이며 열정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일이라고 믿어왔다. 호기심과 열정이 번아웃을 막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로와 탈진으로 점점 많은 아이들이 내 진료실을 찾고 있다. 아이들이 갖가지 요구들을 모두 따르려다 보니 과로하기 때문이다. 단지 학교와 악기 수업, 스포츠클럽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인 요구들과 날마다 헤쳐나가야 하는 정보의 홍수, 한마디로 말해 온 세상이 해당된다."
독일 함부르크대학병원 아동청소년심리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5년 전부터 외래진료소를 찾아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늘어난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처럼 탈진하고 우울해하는 아이들을 ‘번아웃 키즈’라고 명명한다.
독일 아이들은 어느 시대보다 부모의 전폭적인 이해와 지지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못 버티겠다고 아우성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세계를 지배하는 과도한 경쟁과 산업화 그리고 성과주의다. 이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아이들은 예전보다 성적에 대한 부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많은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을 성인들처럼 부담을 주는 유사 직장으로 여긴다. 학교 성적이 미래를 지배하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부모 세대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다.
점점 더 세분화되는 핵가족도 ‘번아웃 키즈’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요즘 부모들은 일상에서 기진맥진하기 때문에 자신의 스트레스를 극복하면서 살기도 바쁘다. 이런 부모의 감정은 종종 아이에게 전염된다. 특히 현재의 경제적 환경, 즉 물질적 풍요에서 후퇴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부모의 신분 상실이나 계층 하락은 아이들에게도 극도의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부른다.
디지털도 ‘번아웃 키즈’를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극단적인 자아도취의 속성을 지닌 디지털 세계에서 아이들은 메시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수많은 셀카(셀프 카메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끊임없는 접속과 반응을 통해 아이들의 자발적 고립을 그냥 두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번아웃 키즈’를 치유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저자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아이들과 눈을 맞출 것을 강력 추천한다. 눈을 맞추는 것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서로를 진지하게 대하고, 존중하며 교류하는 행위다. 눈을 맞춤으로써 아이의 현재 상태와 마음을 이해하고 말 못 할 문제에 좀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형태의 심리적, 신체적 질병을 부른다. ‘번아웃 키즈’도 그렇다. 독일은 유럽연합(EU)을 움직이는 심장으로 가장 안정된 사회와 부를 누리고 있는 선진국가다. 사실 그곳 아이들의 번아웃은 낭만적인 애교(?)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정도 상황에서도 쉽게 지친다. 살인적인 경쟁과 학습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 소리 없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병들어가고 있을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번아웃 키즈
미하엘 슐테-마르크보르트 지음 | 정지현 옮김 | 문학동네 | 340쪽 | 1만5000원
글 · 윤융근 (위클리 공감 기자)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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