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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서로공감] 재미와 교양의 흥미진진 근대사

역사는 재미있다. 누구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기도 하지만 역사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근대사를 살피면 이것이 더욱 실감난다. 기술, 풍습 등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항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를 궁구한 <우리 역사는 깊다>는 흥미롭고도 의미 깊다.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의 연구교수이자 서울시 문화재위원인 지은이는 일제 강점 100주년을 맞은 2010년 날짜별로 60개의 주제를 정해 근대의 흔적을 더듬는 신문 칼럼을 연재했다. 이걸 모은 책인데 교과서에선 정색하고 다루지 않지만, 21세기 한국인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우리 역사는 깊다1

우리 역사는 깊다2

▷우리 역사는 깊다 1, 2 |전우용 지음푸른역사332 · 352쪽각 1만6500 ·1만7500원

때가 때이니 만큼 추석 귀성열차를 다룬 글을 보자. 지금이야 '귀성 전쟁' 하면 '서울서 부산까지 열몇 시간 걸렸다', '서울서 강릉까지 열 시간이 걸렸다'는 등 고속도로 정체가 주요 뉴스지만 1980년대만 해도 추석 귀성열차표 구하는 게 전쟁이었다. 인터넷 예매가 없던 시절, 그 표를 구하는 게 능력이고 벼슬이었다. 그런데 이런 풍경이 50년 남짓밖에 안 된 풍경이란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에 고향을 찾는 귀성열차가 처음 운행된 것은 1956년 9월 15일이다. 추석을 나흘 앞두고 임시 열차가 편성된 것이다. 6·25전쟁이 끝난 후 살길을 찾아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서울로 모여든 이들, '서울시민'이지만 여전히 서울은 타향인 이들을 위한 조치였다. 전쟁 통에 죽은 부모, 형제가 묻힌 고향을 찾으려는 이들이 그리 많았던 모양이다.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열차표 예매소 앞에 장사진이 펼쳐지고, 추석빔을 차려 입고 열차 창문으로 올라타는 등 진풍경이 해마다 벌어졌다.

한데 이 추석 귀성열차의 뿌리는 의외로 깊다. 지은이에 따르면 1921년 추석 특별열차가 처음 편성됐다. 당시 조선 철도를 운영하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운행했는데 오늘과 많이 달랐다. 우선 성묘객을 위한 '귀성용'이 아니었다. 기생들과 더불어 달구경을 나선 서울의 한량들을 위한 '관월(觀月)열차'였다. '귀성열차'는 이보다 늦은 1935년에 등장했는데 엉뚱하게도 설이나 추석 성묘객이 아니라 방학을 맞아 일시 귀향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고향에 돌아온 학생들은 사당이나 선영을 찾아 인사를 올렸기에 이를 '귀성열차'라 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야기'만 실린 게 아니다. 1월 7일과 관련된 글에선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에 얽힌 아픈 사실(史實)이 등장한다. 1927년 이날 조선총독부는 경복궁 앞에 지은 새 청사로 이전했다. 새 총독부 건물은 조선 왕조의 상징인 경복궁과 비교해 일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그뿐 아니라 경복궁 전각을 철거하고는 무덤에나 심는 풀로 여기는 잔디로 그 자리를 덮었다. 궁궐 안의 잔디밭으로 한국인들의 의식에 '왕조의 죽음'을 심겠다는 의도였다고 한다.

예방접종의 시작, 대중교통 수단의 도입 등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캐낸 글들은 역사가 지나간 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성찰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미와 교양, 상식도 함께 주면서.

·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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