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인구 절벽'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2021년부터 노동력이 부족해지며, 2030년이 되면 노동력이 280만 명 부족해지고 2060년이 되면 젊은이 10명이 노인 8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가파른 절벽처럼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 1973년 겨울 주부클럽연합회가 산아 제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출산율이 6명이었지만 2001년부터 15년째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인 15~49세 사이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국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비해 노인 인구 비중은 급격히 증가해 2017년부터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부터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고 한다.
인구 절벽 사태는 노동력 감소를 비롯해 한국 사회의 여러 영역에 걸쳐 기초체력을 허약하게 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도 2015년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인구 절벽 사태를 본질적으로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이를 갖고 낳는 문제는 극히 개별적인 가정사 문제이기에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순응도가 얼마나 높고 얼마나 탄력을 받을지 자세히 예측하기 어렵다. 아이 낳기 캠페인을 벌인다 해도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시작한 정부의 산아 제한정책에 대한 국민의 순응도는 매우 높았다.
인구정책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보자. 광복 직후 남한 인구는 1600만 명 정도였다. "3남2녀로 다섯 명은 낳아야죠." 1950년대의 표어에서 알 수 있듯이, 6·25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출산율이 급증하고 사망률이 감소해 인구증가율은 연 3%에 이르렀다.
따라서 정부는 인구증가율을 낮추지 않으면 경제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과 병행해 인구 증가 억제정책을 도입해 가족계획사업을 추진했다. 1963년에는 전국가족계획대회가 열려 "좀 더 나은 방법을 검토했다"고 당시 신문은 전하고 있다(동아일보 1963년 6월 28일자). 이 대회에서는 '국가 경제에서 본 가족계획', '정관 절제수술이 심신에 미치는 영향', '수태 조절의 새로운 방법' 등 무려 11개의 주제가 발표됐다.
정부는 가족계획사업 초기에 피임약의 국내 생산을 촉진하고 가족계획요원 훈련을 체계화하는 한편, 가족계획사업 10개년 계획(1962~1971)을 수립했다. 10개년 계획의 주된 내용은 1971년까지 20~44세 여성의 피임 실천율을 45%로 높이고, 이 가운데 31.5%는 정부 지원으로, 나머지 13.5%는 자비 부담으로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다음과 같은 표어(슬로건)가 사용됐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계획 실천으로',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 '자녀 많다 후회 말고 낳기 전에 조절하자', '먼저 하는 가족계획 하루 앞선 우리 가정.'
가족계획사업은 법적 근거 없이 내각 수반의 지시 각서에 따라 실시하다, 1973년 피임 시술의 무료 보급 등 가족계획 및 모자보건사업을 규정하고 인공 임신중절의 법적 허용 한계를 설정한 '모자보건법'을 공포했다(법률 제2514호, 1973. 2. 8). 1970년대의 표어는 다음과 같다.
'하루 앞선 가족계획, 10년 앞선 생활 안정',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 되자', '적게 낳아 엄마 건강 잘 키워서 아기 건강'.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남아선호 사상을 타파해야 했는데 가족계획사업으로는 한계가 나타났다.
합계출산율 1.25명으로 세계 220위
국가 미래 위해 '인구 절벽' 위기 극복해야
따라서 1970년대 접어들어서는 당근(보상)과 채찍(규제)을 혼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세 자녀 이하까지 종합소득세 인적공제 제한(1974년, 1977년부터는 두 자녀로 강화), 종사원을 위한 가족계획 관련 지출경비의 손비 처리 허용(1977년), 여성의 상속권을 인정하는 가족법 개정(1977년), 두 자녀 불임 수용 가정에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 부여(1978년) 같은 정책이 대표적인 당근이었다.
그 시절에는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줘 예비군 정관수술 실적은 1975년 8만 건을 넘겼다. 아파트 청약권도 주어졌기 때문에 '고자 아파트'라는 말도 등장했다. 전국적으로 7000개 넘는 '가족계획 어머니회'가 조직돼 가족계획 전도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부는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종료되는 1986년까지 합계출산율을 인구 대체 수준인 2.1명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출산율 감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더 강력한 인구정책을 수립했다. 1981년 12월 가족계획사업 관리제도 개선을 비롯한 49개 시책으로 구성된 새로운 인구 억제정책이 발표됐다.
1980년대 사용된 표어에서 당시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한 가정 한 아이 사랑 가득 건강 가득', '둘 낳기는 이제 옛날 일등국민 하나 낳기',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도 한 자녀를 강조했을 정도로 출산 억제정책이 지속됐다.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우리나라는 1.7명 안팎의 낮은 출산율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인구 억제정책이 계속되면 장기적으로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1994년 구성된 인구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라 1996년 인구 억제정책을 폐지하고 방향을 출산율 장려로 전환했다. '낳을수록 희망 가득 기를수록 행복 가득', '하나는 외롭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동생입니다', '한 자녀보다는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 2000년 이후에는 이런 슬로건이 사용됐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현재 1.25명으로 세계 224개 나라 중 220위를 기록했다. 개인의 출산 문제가 워낙 사적 영역이기는 하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인구 절벽의 위기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당면 과제다.
정부는 1960, 70년대 시행했던 산아 제한정책이 국민의 높은 순응도를 얻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좀 더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인구 증가대책을 마련해 인구정책의 순응도를 높여나가기를 기대한다. 사랑만 하고 아이는 낳지 않는 분들께서는 출산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셨으면 싶다. 아이는 신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계산하지 마시길!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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