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설이 돌아오는 시기는 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철과 우연처럼 일치한다. 설은 보통 양력 1월 하순과 2월 중순 사이에 들어 있게 마련인데, 바로 이때 북반구에서는 독감이 맹위를 떨치곤 한다. 독감 철은 무엇보다 달걀들의 ‘숭고한 희생’을 한 번쯤 되새겨야 할 시기이다. 설 명절 무렵의 달걀이라면, 떡국에 들어가는 지단을 연상하기 쉽다. 맛있는 음식 재료로 활용되는 달걀이 고맙기는 한데, 그렇다고 “웬 숭고한 희생까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독감과 달걀의 희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독감 백신의 대부분이 달걀의 희생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예비된 생명체나 다름없는 유정란들이 대부분 독감 백신 생산에 사용된다. 독감 백신에 활용되는 유정란의 숫자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독감 백신 생산 제약회사로 세계 최대 규모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사용하는 달걀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 드레스덴의 GSK공장에는 독감 백신 생산라인이 한창 가동되는 9~10월, 하루 평균 36만 개의 달걀이 반입된다.
▷ 독감백신의 대부분은 예비생명체나 다름없는유정란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다.
가끔 독감 백신이 부족해 지구촌 전체에 소동이 일어나는 해가 있는데, 이는 대개 달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조류독감(AI)이 유행하면서 백신 제조용 달걀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들이 낳은 달걀은 인간의 독감 백신 바이러스를 키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
2014~15년, 즉 이번 시즌 독감은 유정란들의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아쉬움이 많은 시기로 기억될 듯하다. 독감 백신의 효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23%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정란을 이용해 독감 백신을 생산하는 데는 서둘러도 수주일이 걸린다. 이르면 10월부터 시작되는 독감 철에 대비해 제약회사들은 일찌감치 생산라인을 가동할 수밖에 없는데, 이듬해 독감 발생 예측이 이번에는 크게 빗나간 것이다. 독감 백신은 3종류 혹은 4종류의 독감 바이러스 유행을 예상해 만들어진다. 한데 이번 시즌에는 ‘H3N2’ 계통 바이러스의 예상이 빗나가는 바람에 50~60%였던 예년 적중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1~2월 독감이 유행하는 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북반구를 기준으로 한다면 연중 이 시기에 독감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쉬운 조건, 즉 습도가 낮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탓이다. 동절기에 조류독감 경보가 흔히 발생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여름에 독감이 극히 드문 건 습도가 높이 치솟는 탓이다. 습도가 이처럼 독감 바이러스의 전파를 좌지우지하는 메커니즘은 단순한 듯하지만 과학적으로는 규명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공기 중 습도가 낮으면 독감 바이러스를 품은 수분 알갱이들이 마치 육포처럼 변하고 이때 특히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쉽다는 추정이 가능한 정도이다.
글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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