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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김창엽의 생활정보] 해마의 오묘한 기억 처리

"누구더라, 가만 있자. 건넛마을 영숙이 딸이지? 야~, 너무 많이 변해서 몰라볼 뻔했다." 추석 즈음 고향을 방문하면 알 듯 모를 듯한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달라진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다. 그런가 하면 생전 처음 본 사람인데도 누군가를 빼닮아 누구의 자녀 혹은 형제 등으로 추정할 때도 있다.

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날까? 얼핏 생각하면 알거나 모르거나 해야 하는데,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일이 왜 생기는 걸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중간쯤 되는 모호한 상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장소만 하더라도 어딘가 낯익은 곳들이 있다. 이렇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일들이 생기는 건 우리 두뇌의 복잡한 작동 방식 때문이다.

해마

▷인간의 기억력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위인 해마의 신경연결망을 3차원으로 표현했다. KIST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의 두뇌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위가 '해마'이다. 해마는 뇌의 측두엽, 즉 관자놀이 부근 뇌 영역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생김새가 바닷속에 사는 생물 해마를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불린다. 해마는 기억 처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전모가 속속들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실험에 따르면 해마에 손상이 가해지면 인간은 과거의 기억, 즉 장기 기억을 잃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기억은 해마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러한 기억 현상은 해마 속에 있는 최소한 두 개의 특정 부위가 서로 경쟁을 한 결과 빚어진 것이다. 두 개 부위란 다름 아닌 해마의 '톱니 융기 부위(Dentate Gyrus)'와 'CA3' 부위로, 이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고집하기 때문에 본 듯 보지 않은 듯한 일이 생긴다.

톱니 융기 부위는 뇌에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즉 사람이 어떤 사물을 목격할 경우 이를 자동적으로 '새로운' 정보로 인식한다. 다소 과장되게 단순화하면 매일 보는 아내 혹은 남편이나 자식도 톱니 융기 부위에서는 일단 새로운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반면 CA3는 기존의 정보와 비교해 그 차이를 최소화하는 일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아내가 헤어스타일을 약간만 바꿨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남편의 톱니 융기 부위는 아내를 새로운 사람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동시에 CA3는 헤어스타일의 미미한 변화에 불과할 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아내임을 확인한다.

CA3의 이런 작동 방식을 감안하면 본 듯 보지 않은 듯한 사물 혹은 사람은 CA3의 인식범위 경계를 넘어설 듯 말 듯한 기억의 대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처음 대하는 사물 혹은 상황이지만 마치 과거에 경험해본 듯한 경우가 있다. 이른바 데자뷔(Deja-vu : 기시감)다. 학자들은 데자뷔 역시 해마의 CA3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CA3는 오묘하기 짝이 없는 인간 두뇌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부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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