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고추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려야 뺄 수 없는 귀중한 음식 재료다. 요즘 시골 나들이 길에 나서면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거나, 말리기 위해 마당에 널려 있는 고추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파란 가을 하늘과 대조되는 고추의 붉은빛은 시골 풍경에 강렬한 액센트를 남긴다. 먹을거리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볼거리로도 빠지지 않는 게 바로 고추다.
고추는 색깔만 강렬한 게 아니라 맛 자체도 맵기 그지없다. 사실 고추는 생김새와 색깔, 성질까지 여러모로 매우 독특한 작물이다. 생김새만 해도 유사한 작물이 거의 없다. 기다란 호박과 오이, 갓과 무청 등이 서로 비슷하게 생긴 데 반해 고추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작물은 없다시피 하다. 그런가 하면 고추는 다른 농작물에 비해 농약을 상대적으로 많이 쳐야 하는 작물이다.

▷제주도의 한 농가 골목에서 아주머니가 빨간 고추를 말리고 있다
고추가 농약 신세를 많이 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말할 나위 없이 병충해 때문이다. 고추의 원산지는 덥지만 건조한 아메리카 지역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여름철 날씨는 충분히 덥기는 하지만 습기가 많은 탓에 병해충이 기승을 부린다. 습도가 높은 날씨는 병해충 확산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고추를 맵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로도 지목된다.
고추가 매운 작물로 진화한 연유 가운데 하나로 식물학자들은 '자위'를 꼽는다. 짐승이나 병해충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추 열매가 매워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특히 매운 고추 품종은 상대적으로 습도가 높은 지역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는 추정도 있다. 습도와 고추의 맵기가 대체로 비례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추는 돈벌이가 되는, 이른바 대표적인 경제작물 가운데 하나다. 뒤집어 얘기하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들여야 만족할 만한 수확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국내와는 달리 남미 등에서는 야생 상태에서 자라는 고추도 수두룩하다. 남미의 볼리비아 등이 대표적인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 지역에서도 물이 적은 환경에서 자라는 고추는 매운맛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건조한 날씨에서는 병충해가 심하지 않은 탓에 고추 또한 덜 맵게 적응한 것이다.
매운맛의 대명사인 고추와 관련해 흔히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같은 품종으로서 같은 환경에서 자란다면 작은 고추라고 매울리 없다. 특히 성장이 다 되지 않은 어린 고추라면 오히려 덜 매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환경이나 생육 여건이 달라져 고추가 자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좀 더 매울 확률이 높다. 생육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은 병해충 등의 공격에 그만큼 취약한 것이므로 고추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운 성분을 더 맹렬히 합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운 고추를 즐긴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한국 음식이 대체로 더 매운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추가 월등히 매운 편은 못 된다. 아메리카나 인도 등에는 청양 고추보다 훨씬 더 매운 고추도 적지 않다.
글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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