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바이러스는 종종 ‘두려움’의 동의어로 인식된다. 다른 질병들과 달리 바이러스로 생기는 병은 이렇다 할 ‘약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에 치명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와 인간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일까? 얼핏 생각하면 ‘바이러스=가해자’, ‘사람=피해자’인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상으로 만든 네안데르탈인 모형. 한때 현대 인류의 가장 큰 잠재적 경쟁자였던 네안데르탈인이 절멸한 데는 바이러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견해가 있다.
인간이란 동물은 유전자 차원에서 따지면 약 10분의 1 정도는 ‘바이러스’다. 예컨대 직장 동료나 친구가 ‘겉으로는’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게놈 기준으로는 ‘인간과 바이러스’의 연합체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는 얘기이다. 바이러스는 유전 물질(DNA, RNA)을 중심으로 이뤄진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쯤 되는 존재이다. 그런데 DNA로 이뤄진 인간의 게놈 가운데 최대 10%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옛날 옛적 인간의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아예 유전자 안으로 들어와 자리 잡게 됐고, 그 유전자를 대대손손 물려주고 있는 것이다.
애초부터 사람은 바이러스를 안고 사는 게 숙명이었을 수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 변이를 거듭해왔는데, 변이된 유전자 가운데 103개가 바이러스 감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변이된 유전자 11개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이다. 거칠게 해석하면 빙하기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후변화보다 바이러스의 내습이 인간의 생존에 훨씬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인간이 있기까지 바이러스가 일방적으로 피해만 주지는 않았다. 한때 현대 인류의 가장 큰 잠재적 경쟁자였던 네안데르탈인이 절멸한 데는 바이러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짐작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오늘날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것은 그 특정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네안데르탈인의 사망률이 호모사피엔스에 비해 단 2%만 높았다 해도, 네안데르탈인은 바이러스 전염이 시작된 뒤 불과 1000년 안에 절멸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안데르탈인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유럽인들의 침탈 이후 사망한 북중미 원주민 가운데 많게는 90%가량이 바이러스 등 감염성 질환에 따른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인에게는 이미 저항력이 생긴 바이러스 질환이 원주민 사회에 급속히 퍼지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인간과 다른 생물 간, 혹은 인간 그룹 간 경쟁에서 바이러스가 한쪽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
관점에 따라선 현대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튼튼하게 단련된 몸을 갖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몸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 가운데 최대 10%가 원래는 바이러스 유전자였다는 점은 현대 인류가 최소한 지금까지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살아남은 ‘생물 종’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바이러스와 인간은 적대하면서 동시에 공존해온 관계이다.
글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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