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김창엽의 생활정보] 짧은 숫자가 좋아! 사람의 단기 작동 기억

"우리나라도 우편번호가 미국처럼 이제 다섯 자리로 바뀌었네요. 외우기가 훨씬 쉬울 거 같아요. 전에 미국에서 (한국) 우리 집으로 소포 보낼 때 우편번호 기억을 못 해서 매번 찾아봐야 했거든요." 15년 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다 지난해 귀국한 청년 김 씨는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새 우편번호 제도에 반색했다.

우편번호

▷8월 1일부터 ‘외우기 쉬운’ 다섯 자리 우편번호가 이용되고 있는 가운데 7월 31일 서울 광화문우체국에 새 우편번호 시행을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우편번호 자릿수가 6개에서 5개로 단 1개 줄었을 뿐인데 김 씨 말처럼 정말 기억하기가 한결 쉬워졌을까? 두뇌와 신경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김 씨의 말은 '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두뇌가 평소 작동하는 방식을 감안하면 6자리 숫자와 5자리 숫자는 속된 말로 단순한 한 '끗' 차이가 아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평소 대략 5~9자리의 숫자를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휴대전화 번호는 보통 10자리로 구성돼 있어 한 번 듣고는 여간해서는 암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앞 세 자리, 즉 010 등을 제외한 나머지 7, 8자리라면 그런대로 암기할 수 있다.

숫자 등에 대한 기억은 이른바 '단기 작동 기억(Working Memory)'의 형태로 두뇌에 보관되고 활용된다. 단기 작동 기억의 알기 쉬운 예로는 길을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변에 대한 기억이다. 예컨대 행인으로부터 "저기 사거리 보이죠. 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두 번째 건물"이라는 답을 들었다면, 이 같은 말에 대한 기억이 단기 작동 기억이다.

숫자 암기 또한 단기 작동 기억의 가장 흔한 형태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미롭게도 숫자를 낱낱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한 예로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801227이라는 6자리 숫자가 있다고 가정할 때 8, 0, 1, 2, 2, 7의 6개 숫자 하나하나를 낱개로 기억하지 않고 80, 12, 27 등 2개씩 묶어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801, 227로 3개씩 한 덩어리로 암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끊어서 읽는 덩어리의 자릿수가 크면 클수록 기억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은행 계좌번호처럼 자릿수가 많은 것들을 외우기 어려운 이유이다. 우편번호가 6자리에서 5자리로 한 자리 줄어든 것만으로도 외우기가 훨씬 쉬워지는 건 이처럼 숫자를 다루는 인간 특유의 단기 작동 기억 방식 때문이다.

단기 작동 기억은 지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즉 단기 작동 기억이 좋을수록 지능지수가 높을 확률이 그만큼 크다. 단기 작동 기억은 흔히 컴퓨터의 램(RAM)으로 비유된다. 컴퓨터의 메모리는 크게 램과 하드디스크 메모리로 나눈다. 하드디스크에는 프로그램과 파일, 운영체제(OS) 등 영구적 정보가 보관된다. 반면 램은 연산할 때마다 그때그때 작동한다. 컴퓨터의 작동 속도는 인간의 지능에 비유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램의 성능이 좋을수록 컴퓨터는 빠르게 돌아간다.

아파트 현관문의 전자 키나 각종 번호 열쇠 등은 보통 네 자리 숫자로 설계돼 있다. 물론 자릿수가 커질수록 보안성은 향상되지만 자릿수가 늘어날수록 '비밀번호'에 대한 암기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일상에서 흔히 이용하는 비밀번호가 네 자리 정도로 정해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5.08.17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