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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꽂이] 시인의 지친 삶, 이집트서 위로받다

찬란한 고대 인류 문명을 간직한 이집트의 매력과 신비는 여전히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그리고 수많은 파라오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20세기 최고의 시인이 본 이집트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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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이집트 여행|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호르스트 날레브스키 엮음|정현규 옮김|문학판|284쪽|1만4000원


“이 강은 마치 어떤 운명, 즉 비밀에 싸인 출생과 위대하고 내력 많은 죽음, 그리고 그사이 자신과 가 까이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수천 년 동안 할 일을 안겨주었던 제왕의 삶을 지닌 듯 느껴집니다. 그토록 거대하고, 요구하는 바가 많은, 극복하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이 강이었답니다.”

독일 현대시를 완성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집트를 방문하는 순간 이집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그의 아내 클라라 릴케가 이집트에 머물렀던 터라 여행을 위한 사전 준비는 철저했다. 1911년 1월부터 3월 까지 이집트 여행길에 오르며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시를 통해 그가 겪은 이집트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릴케는 호화 여객선 ‘위대한 람세스’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카이로에서 아스완 쪽으로 필라에섬까지 갔다 돌아왔다. 주요 방문지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자리 잡고 있는 멤피스, 베니수에프, 고대 이집트 의 신왕국 테베, 이집트 신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몬 대신전이 있는 카르낙, 왕가의 계곡이 자리 잡 고 있는 룩소르, 그리고 BC 2세기의 신전 유적이 있는 콤옴보였다.

당시 30대 중반을 지나던 릴케는 예술적, 실존적 창작의 위기를 겪고 시대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 그 도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유럽과는 너무나 다른 풍광이 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몸을 맡기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북아프리카를 거쳐 그의 눈길이 도착한 곳이 바로 이집트다.

릴케는 5000년 전에 인간 의지와 믿음으로 만든 스핑크스의 모습을 본 후 완전히 압도당한다. “숭고 하게 들린 이 스핑크스의 머리가, 어마어마하게 오랫동안 현존해온 전체 시간을 지닌 채 공간 속으로 움 직여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기이하다’는 이 단어가 누군가에게 다시 단어 그 자 체가 될 정도로 기이합니다. 계속해서 나는 이런 생각을 반복해야 한답니다.

여행은 다양한 공간에 아로새겨진 역사와 대화하면서 자신을 한 단계 심화해가고 낯선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가는 과정이다. 릴케는 이집트 체험이 자신의 삶에서 일종의 분수령, 즉 고통스러운 이전 의 삶과 희망 찬 이후의 삶을 경계 짓는 지점이라 칭했다. 20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의 끝자락에서 시인은 이집트 여행을 통해 서구적 질서에서 바라본 우월한 태도를 버린다. 그리고 민감해진 자의식을 선물로 안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식물 세계에서 그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이집트 조각상들을 대하면서 느낀 것 이었고, 그 이후로 이집트의 물건들 앞에만 서면 느끼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비밀! 나일강의 배 위에서 나는 아라비아적인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 윤융근 (위클리공감 기자) 201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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