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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상의 역사] 간첩 신고 정신 절대 잊지 말자

 

최근 여러 경찰서에서는 간첩 신고 모의훈련을 실시한다. 간첩이 나타난 상황을 설정해 도주로를 차단하고 간첩을 검거하는 현장 조치 위주로 훈련한다고 한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간첩에 관한 뉴스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간첩 신고’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신문과 방송의 뉴스는 물론 전국의 담벼락 표어에 이르기까지, 반공방첩이나 승공통일에 관한 캠페인이 산아제한 정책 캠페인을 능가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실시됐다. 1960년대 후반으로 돌아가 그 무렵 반공 캠페인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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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보병 제39사단사령부의 달력에 표시된 ‘간첩 신고’ 안내.

 

보병 제39사단사령부의 달력 ‘간첩 신고’편(1968년)은 저 아득한 기억의 사진첩 같다. 1960~70년대엔 달력이 귀했던 시절이라 달력 한 장을 1년 내내 안방의 잘 보이는 쪽 벽에 걸어놓고 온 가족이 날짜를 세고 기념일을 꼽았다. 그냥 날짜만 표시된 달력이라면 모르겠으나 달력 중앙에 ‘간첩은 이렇게 행동합니다’ 같은 내용을 담았다면, 이는 분명 정부의 정책 홍보 메시지에 해당한다. 달력 하단에는 인근 경찰서나 군부대에 속히 간첩 신고를 하라는 내용을 제시했으며, 20만 원의 신고 보상금(포상금)을 준다는 사실도 큰 글씨로 강조했다.

이 달력에서 제시한 간첩 식별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외딴 오두막집에 와서 곡식이나 밥, 반찬 등을 얻으러 다니거나 남몰래 훔쳐갑니다. 2. 식량이나 일용품, 담배, 그 외에(외의) 물건들을 당신에게 사다달라고 부탁을 하여 돈을 후하게 쓰는 수가 있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는 수가 있습니다. 3. 물건의 이름을 잘 몰라 이것저것 가르키며(가리키며) 얼마씩 하느냐고 묻기도 하며 살 때도 있고 안 사는 때도 있습니다. 4. 깊은 산에서 3~4명 또는 6~7명이 같이 다닙니다. 5. 산에서 많은 짐을 지고 다니며 옷차림이 어색합니다.”

우리 사회는 간첩이란 단어에 언제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분단국에서 이 단어는 그 어떤 말보다 위험한 함의를 품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간첩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이 나왔던 배경도 간첩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일단 주목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일호 감독의 <국제간첩>(1965)과 문여송 감독의 <간첩작전>(1966)을 필두로,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 김현정 감독의 <이중간첩>(2003), 장훈 감독의 <의형제>(2010), 우민호 감독의 <간첩>(2012),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에 이르기까지 간첩을 주제로 한 숱한 영화가 제작됐다.

포상금도 50여 년 사이에 20만 원에서 최대 5억 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간첩 신고가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는 근거이리라. 그런데도 시민들의 안보의식이나 간첩 신고에 대한 관심은 예전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듯하다. 눈만 뜨면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도 좀 둘러봐야 할 것 같다. 전화번호 111과 113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전 한국PR학회장) 201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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