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좀비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등을 펴내며 21세기 한국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김중혁은 매우 예민한 귀를 지닌 작가다. 그의 <자동피아노>는 “어째서 소리가 모이면 음악이 되는 것일까, 소리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일까 아니면 창조하는 것일까, 왜 어떤 것은 소리이고 어떤 것은 음악일까”라는 문제를 고민하는 두 피아니스트의 대화를 주조로 하는 소설이다.
비토는 “음악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음을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몸으로 육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음, 소리가 먼저 존재한다. 피아니스트가 음을 만들어 내서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다만 투명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통째로 예술에 빌려줘야 한다”고 비토는 강조한다. 실제로 비토는 개별의 소리들이 제값을 잃지 않으면서도 음악으로 통합되고, 그 음악이 속한 음악 장(場)에 허심탄회하게 조화를 이루며, 그런가 하면 다시 독립적인 소리로 생명을 지닌 채 세계로 되돌아가는, 그런 리듬의 세계에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자 한 예술가로 이야기된다.

가령 비토가 연주하는 소리를 주인공이 전화로 듣는 장면에서는 독립적인 소리·음이 음악으로 수렴되고, 음악을 통해 다시 소리·음들이 확산되는, 수렴과 확산의 원환적 반복과 순환을 통해서 소리와 존재의 숨결을 탐문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눌 수 있다. 이때 개별 소리와 전체로서의 음악은 ‘따로-함께’ 공존한다. 나누어지는 듯 어우러지며 공존한다.
연주자와 음악, 수용자의 관계도 그와 흡사하게 행복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근대 이후 인간과 예술을 괴롭히며 숨결의 리듬을 방해하던 주체와 객체의 험악한 분열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까 연주가 이루어지는 현재 시간의 연주 행위는 독주일 수 없다. 소리·음, 음악, 연주자, 수용자가 서로 스미고 짜이며 진정한 소통을 위한 생명의 리듬을 합주한다. 작가 김중혁이 꿈꾸는 음악적 황홀경은 이런 리듬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한 어떤 경지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맥락에서 김중혁의 <엇박자 D>의 세계 역시 흥미롭다. 음치에 가까워 박자를 제대로 맞출 수 없었던 ‘엇박자 D’는 학창 시절 합창 공연을 망쳐놓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무성영화 전문가로 성장한 그는 공연기획자인 ‘나’와 함께 무성영화와 음악을 리믹스한 공연을 한다. 공연의 끝에 그는 회심의 리믹스 작품을 관객들에게, 특히 학창시절 합창을 같이 했던 옛 친구들에게 선사한다.
“22명의 음치들이 부르는 20년 전 바로 그 노래”라고 ‘엇박자 D’가 말하고 있거니와, 한 사람의 소리가 둘, 셋, 넷, 다섯 사람의 소리로 바뀌면서 합창이 되는데,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음도 박자도 맞지 않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 그런 노래였다. ‘나’는 그 노래가 매우 아름답고 절묘하게 어우러졌다고 느낀다.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각각의 소리가 어느 한 곳으로 귀속되거나 구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소리를 해쳐 어설픈 혼돈의 도가니를 만들지도 않은 절묘한 상태가 아닐 수 없다. 각각의 소리가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가 되어 서로 호응하는 상호주관성의 지평에서 서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전체의 생명을 얻는 장관이다. 합창이면서 독창이고 독창이면서 합창인, 이 세계는 불가능한 듯 보이는 개인과 집단의 조화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조화의 리듬을 통해 생명력 있는 리듬의 형성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같은 인류의 오래된 과제는 새삼 환기된다. 낙엽지고 날씨가 쌀쌀해진다. ‘따로-함께’ 이루는 콜라보레이션의 미학이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 다채롭게 이루어진다면 조금은 덜 쓸쓸할 수 있겠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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