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랍비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길 떠난 나그네였다. 작은 램프 하나를 지닌 그는 나귀와 개를 길동무 삼아 여행 중이었다. 날이 저물어 밤이 되자 랍비는 헛간을 빌려 그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아직 잠이 들기는 이른 시간이어서 램프를 밝히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에 램프 불이 꺼지자 랍비는 할 수 없다 싶어 그만 잠을 청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게 웬일인가. 길동무인 개와 나귀가 없어진 것이다. 그가 잠든 사이 여우가 개를 물어가 버렸고, 사자가 나귀를 죽여 버린 터였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랍비는 램프만을 챙겨 홀로 길을 떠났다.
다른 마을에 접어들었는데, 그 마을의 분위기가 참으로 적요했다.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날 밤 도둑들이 침입해 이 마을의 집들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결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랍비는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만일 램프가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도둑들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또 개가 살아 있었더라면, 갑작스러운 상황에 부산하게 움직이며 짖는 개 소리를 듣고 도둑들이 몰려왔을 게 틀림없었다. 나귀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림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길동무들을 깊이 애도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생존에 안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자신이 지녔던 것을 잃었을 때 무척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탈무드>의 이 랍비는 그렇지 않았다.
옛날에 만리장성의 한 변경에도 그 랍비와 비슷한 노인이 살았다. 어느 날 자신이 기르던 말 한 필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위로했지만, 노인은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자위했다. 과연 그말이 다른 말 한 필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정말 경사라며 축하해 주었다. 반대로 노인은 기쁜 안색을 멀리하며 거꾸로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경계했다. 얼마 뒤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이에 이웃들이 노인을 위로하자 노인은 그게 좋은 일로 바뀔 수도 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오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 마을의 청년들은 죄다 전쟁터에 징발되어 갔는데, 노인의 낙상한 아들은 불구인 다리 덕분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어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다들 아는 것처럼 새옹지마(塞翁之馬) 이야기다.
이 만리장성의 새옹이나 <탈무드>의 랍비는 모두 인생이라는 역설의 의미를 깨우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바뀔 수 있고 좋아 보이는 일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 너무 탐할 필요없으며, 뭔가 많은 것을 잃어버려 최악의 상황인 것처럼 보여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등 단순한 듯 보이는 이 이야기들이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많다. 보통사람들이 보이는 달의 표면 쪽을 말할 때 보이지 않는 달의 뒤편을 성찰할 수 있는 그윽한 심안을 지녔던 현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덕경>에서 들려주는 노자의 목소리 또한 그런 반(反)의 역설적 동력을 생각하게 한다. 있음과 없음, 높고 낮음, 길고 짧음, 쉬움과 어려움, 앞과 뒤 등의 대립항들은 서로의 존재 근거이다. 그러니 한 쪽 편에만 머물며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말 한 필이 더 생겼다고 희희낙락할 일이 아니고, 램프 불이 꺼졌다고 절망할 일도 아니다. 달의 뒤편이 있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7.14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