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툇툇, 툇.”
수박을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수박씨에 얽힌 추억이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수박씨를 입 속에서 발라내 총 쏘듯 입술 사이로 뱉어내며 장난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또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집 주변에서 심지도 않았던 수박이 나는 광경을 목도했을 수도 있다. 변을 통해 나온 수박씨나 입으로 뱉어낸 수박씨가 마당이나 밭 한구석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는 일이 흔했던 탓이다.
수박은 원래 씨가 많기로 유명한 과일이다. 한 통에 보통 300~500개의 씨앗이 있다. 살구나 자두, 사과, 배, 귤 등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수박은 게다가 과육 전반에 걸쳐 씨가 고루 퍼져 있다. 씨를 씹거나 삼키기를 원치 않는다면 매번 적어도 수십 개씩 입 밖으로 골라내지 않을 수 없다.
수박이 여름철에 사랑받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요즘 수박 가운데는 씨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에게는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사실 씨 없는 수박은 생물학적으로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다.

씨 없는 수박은 씨가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씨를 맺지 못한다. 제아무리 영양이 뛰어나고 맛이 있다 한들 자손을 남길 수 없다는 얘기다. 후손 남기기는 생명체의 으뜸가는 욕구이다. 수박과 같은 식물들의 번식 본능도 동물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수박 가운데 씨 없는 수박의 비율은 정확하게 집계된 바 없다. 미국의 경우 전체 판매량의 70퍼센트 안팎이 대를 잇지 못하는 씨 없는 수박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박의 씨를 없애는 방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똑같이 씨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출신’은 제각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부터 흔히 써온 씨 없는 수박 만드는 ‘수법’ 가운데 하나는 염색체 숫자를 조정하는 것이다. 원래 수박은 22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정상적인 이런 수박은 2배체로 불린다. 한데 정상적인 수박을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물질로 처리하면 44개의 염색체를 가진 이른바 4배체 수박이 만들어진다. 4배체 수박과 2배체의 정상 수박을 교배시키면 염색체 숫자가 ‘부모’의 딱 중간인 33개로 변한다. 이렇게 탄생한 수박은 3배체로 불임이다.
그런가 하면 정상적인 수박의 암꽃 밑 자방을 생장조정제로 자극해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자방은 훗날 수박으로 자라는 부분인데, 여기에 식물호르몬을 발라주면 꽃가루(정충)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럭무럭 크게 된다. 꽃가루가 들어가지 않았으니 이런 수박 역시 씨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른바 속칭 ‘공갈 임신’ 기법을 통해 씨 없는 수박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수박 꽃가루에 약한 엑스선을 쬐어서 꽃가루의 수정능력을 없애는 것이다. 이런 꽃가루가 수박의 암술과 만나면, 겉으로는 수정이 이뤄지는 듯하지만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씨 없는 수박이 만들어진다. 엑스선을 쬔 꽃가루는 사람으로 치면 수정능력이 없는 정충과 비슷하게 변하는 까닭이다.
씨 없는 수박은 수박 특유의 ‘성생활’에 인간이 간섭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연주의자들 가운데는 이런 이유 등으로 씨 없는 수박의 확산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크게 보면 씨 없는 수박 또한 일종의 유전자변형(GM) 농산물이라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씨 없는 수박들은 특정 유전자를 집어넣거나 빼내는 등의 방식으로 생산되는 최신 유전자변형 기술과는 전혀 다른, 자연계에서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된다. 더구나 씨 없는 수박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보고는 아직까지 없다. 그래도 씨 없는 수박의 등장 배경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좀 차이가 있지 않을까.
글·김창엽(자유기고가) 2014.07.14
도움말 : 이우문 농업연구사(국립원예특작과학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