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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우찬제의 문화이야기] 무의미는 ‘존재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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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해마다 10월이 되면 노벨문학상의 향방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06년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예측한 영국의 베팅업체 래드브록스에 따르면 <상실의 시대>, <1Q84> 등을 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한톨의 밀알>, <까마귀의 마법사> 등을 쓴 케냐 작가 응구기와 시옹오, 알제리의 여성 작가 아시아 제바르, 우크라이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미국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 노르웨이의 극작가 욘 포세, 체코 출신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 한국의 시인 고은 등이 유력한 후보인 모양이다.

이 후보들 중에서 1929년생인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는 ‘농담’의 황혼을 안타까워하면서 ‘무의미’를 사랑해야 한다는 역설적 제안을 하고 있는 신작이다. 1967년 <농담>을 발표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작가연맹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뚜렷한 명성을 얻은 쿤데라는 ‘프라하의 봄’ 이후 프랑스로 망명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을 쓰면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1986년 이후 거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작가로 추천되었다.

개인의 자유문제를 형이상학적으로 추구한 초기부터 그는 무거운 존재감이야말로 인간을 견딜 수 없게 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존재의 무거움을 마치 스케치하듯 가볍게 보여주면서도 복수, 망각, 진지함과 진지하지 않음, 역사와 인간의 관계, 자신의 행위로부터의 소외, 섹스와 사랑의 분리, 의미와 무의미 등 실존적 주제들을 탐문했다.

널리 알려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만 하더라도 그렇다. 가벼움과 무거움, 참을 수 있음과 참을 수 없음, 배반과 동정, 냉소와 미소, 섹스와 사랑, 육체와 영혼 등등 상반되는 특성을 지닌 두 줄기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스케치하면서, 작가는 작품 곳곳에 형이상학적 성찰의 목소리들을 몽타주 악보처럼 얽어놓는다. 가벼움과 무거움, 경쾌한 사랑과 형이상학적 사상은 상호 교차되며 다성적으로 어울리는 공명음을 일으킨다. 확실히 그의 사랑 이야기는 매우 가벼운 듯 무겁게, 혹은 매우 무거운 듯 가볍게 연주된다.

<무의미의 축제>에서는 ‘배꼽의 에로티시즘’과 관련한 육체의 상상력과 더불어 ‘농담의 수사학’이 어지간하게 펼쳐진다. 첫 소설 <농담>에서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다루었던 쿤데라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스탈린의 예화를 교묘하게 비틀면서 ‘웃자고 한 농담’이 ‘역겨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성찰한다. 농담이 ‘아무도 웃지 않는 장난’으로 전락하고 역동적인 소통의 지평을 열지 못한 채 ‘역겨운 거짓말’로 퇴락할 때 삶의 윤기나 매력은 확실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겁고 진실한 포즈로 건넨 말들이 역겨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더 험악하다. 그런 시대를 탈내고 균열내기 위해 작가는 무의미를 응시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혹은 개체성과는 거리가 먼 배꼽이 새로운 에로티시즘의 표상이 된 시절 농담이 거짓말로 폄훼되는 현실에서 가벼운 것, 보잘것 없는 것, 의미 없는 것들의 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작가의 제안은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교수)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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