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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상의 역사] 재난 극복은 충무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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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다. 세월호 참사는 경주의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발생한 탓에 국민들의 허탈감은 더할 수밖에 없다.

여러 요인을 종합해 볼 때 이 사고는 사회적 재난에 해당한다. 사회적 재난은 안전 의식이 없는 사회문화적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사고도 예외는 아니었다. 재난은 발생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핵심 쟁점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마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4월 28일)을 맞아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그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 보자.

현대의 기업 이미지 광고 ‘이충무공 탄신’ 편(동아일보 1978년 4월 28일)을 보자. 이 광고는 현대에서 냈지만 1970년대 무렵에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기업에서 광고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는 점에서 정책 홍보와 궤를 맞춘 기업 광고라 할 수 있다. 광고 지면의 거의 대부분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차지하고 있다. 휘하 장졸들에게 일갈(一喝)하는 것 같은 눈빛만으로도 장군의 위용이 느껴지는 디자인 감각이 돋보인다.

광고를 시작하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충무공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높으신 뜻 - 국가에 대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충성심으로 국난을 극복하신 영세불멸(永世不滅)의 드높은 정신을 온 국민이 함께 받들어 오늘의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합시다.”

이 광고에서는 충무공의 숭고한 뜻을 받들자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 광고를 보면 세월호 침몰 사고에 어떻게 대처했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만약 세월호 관계자들이 자기 이익을 버리는 멸사(滅私)의 정신으로 퇴선 명령을 내리고 승객들을 구하는 봉공(奉公)의 정신으로 임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에서는 정보를 중시했던 이순신 장군의 면모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본 것은 본 대로 보고하라.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보고하라. 본 것과 들은 것을 구별해서 보고하라. 보지 않은 것과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말라.” (김훈, <칼의 노래> 중에서). 본 것과 들은 것을 따로 구별해 보고하게 하고 그 밖의 것은 아예 보고하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정보장교였던 셈이다. 충무공은 용장이자 덕장이었지만 동시에 정보 관리를 중시했던 정보사령관이기도 했다.

만약 세월호 사고의 원인 제공과 사후 대처를 맡은 관계자들이 본 것은 본 대로 보고하고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분리해 보고했더라면 위기관리 양상은 상당히 달라졌으리라. 언론 보도 역시 사실과 소문 및 허위가 뒤섞여 혼란을 초래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자신을 민간 잠수사라고 속이며 언론 인터뷰를 한 ‘홍가혜’ 사건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타이타닉호의 비극>(1958)이나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 같은 재난영화를 보며 재난의 가공할 스펙터클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재난 안전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재난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는 데 모든 지식과 지혜를 끌어모아야 한다. 사회적 재난이든 자연적 재난이든 재난에 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현장 지향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법과 제도를 통해 뒷받침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충무공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오늘의 시련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때다.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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