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이렇게 말한다. “근원어 ‘나·너’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해질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비슷한 얘기를 시인 정현종은 이렇게 노래한다. “밤이 자기의 심정처럼 / 켜고 있는 街燈(가등) / 붉고 따뜻한 가등의 정감을 / 흐르게 하는 안개 // 젖은 안개의 혀와/ 가등의 하염없는 혀가 / 서로의 가장 작은 소리까지도 / 빨아들이고 있는 / 눈물겨운 욕정의 친화.”(<교감> 전문)
사물의 꿈과 시인의 꿈이 내밀하게 어우러진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정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시는 매우 동적인 에너지를 함축한다.
가등에 안개가 교감하고 있는 현상을 포착하는 시인의 의식 때문이다.
가등은 정지 상태의 사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밤의 심정으로 빛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운동성을 확보한다. 그 운동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없다. 또 다른 운동성과 상호 교감할 때, 내부에 깃들인 운동성이 제 의미를 알게 된다. 바로 동적인 안개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정지 형태의 명사 가등의 ‘정감’을 동적 이미지로 흐르는 명사 안개가 흐르게 한다. 이 교감을 통해 두 명사(사물)는 정감적 형용사와 율동하는 동사들이 호응하는 가운데 서로서로 스며든다. 가등은 안개가 되어 흐르고, 안개는 가등의 붉고 따뜻한 기운을 더한다. 마침내 두 사물은 ‘눈물겨운 욕정의 친화’라는 에로스의 절정 상태로 동반 상승한다. 정적인 한순간을 시인이 영원한 역동성을 지닌 리비도로 충일한 세계로 승화시킬 때, 사물의 꿈과 시인의 꿈이 빈틈없이 교감하면서 생명력은 극대화된다.
밤안개 흐르는 호숫가에서만 이 시를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최근 나는 한밤중 어느 음악 경연프로그램을 보다가 이 시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몰려들어 여러 차례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르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연이 있었다. 그중 나로 하여금 <교감>이란 시를 떠올리게 한 것은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였다. 경쟁자들이 하나의 노래를 협력해 같이 부르는데, 정말 아름다운 경우는 ‘눈물겨운 욕정의 친화’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온 존재로 상대에게 스며들고 상대를 받아들이며 절정의 화음을 연출하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교감이나 공감에 바탕을 둔 진정한 협력관계를 도외시한 채 자기만 돋보이려 한 경우는 그 자신은 물론 팀 전체가 몰락의 처지를 면하기 어려웠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공감의 시대>, <3차 산업혁명> 등 책을 낼 때마다 세계적인 반향을 얻었던 제레미 리프킨이 신간 <한계비용 제로 사회>를 펴냈다고 해서 보니 이번에는 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다. 그가 보기에 시장 자본주의는 이제 협력적 공유사회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예비하고 있다. 경쟁과 혁신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제고해 온 자본주의가 그 스스로 생산성 딜레마를 넘어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할 점이 많긴 하지만 나는 우정 리프킨에게 한 표 선사하고 싶다. 최근 내가 관여하고 있는 도서관에서 데이터베이스 비용 때문에 심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 제약은 심한데 해마다 DB 가격이 상승하다 보니 개별 대학이나 도서관 차원에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협의회 차원에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가 예감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고 있는 처지여서, 그리로 갈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서둘러 마련하고 싶은 것이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로욜라도서관장)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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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