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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상의 역사] 기차 안 ‘삶은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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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의 일화 한 토막. 사목 활동을 하던 신부 시절의 언젠가 기차를 타고 생활이 어려운 신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승객을 빼곡하게 태우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신부님은 차창 밖을 보면서 이런저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믿음으로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정녕 삶이란 무엇인가? “답이 없네, 답이 없어”하며 마음속으로 답답해 하고 있는데, 저 멀찍이 좁은 기차 통로 사이로 홍익회 판매원이 손수레를 밀면서 이렇게 외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삶은 계란이요.”

그래서 신부님은 “삶은 계란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할진대,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삶은 계란 하나를 얻느냐 못 얻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란 사람(ㅅㅏㄹㅁ)의 줄임말이기도 하다는데, 발음을 비튼 동음이의(同音異意)에서 나온 이 유머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할 때면 가끔 생각난다. 손수레를 밀며 다가오는 홍익회 판매원의 어슴푸레한 모습과 함께.

홍익회(현 코레일유통)의 광고 ‘친절한 서비스’ 편(경향신문 1969년 1월 29일)을 보자. 헤드라인은 “친절한 써-비스 즐거운 여행”인데, 1960년대 말에 유행했던 운율을 맞춘 대구형 헤드라인을 썼고 서비스가 아닌 ‘써-비스’라고 표기한 점에서 외래어 표기법의 변천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헤드라인을 썼으면 당연히 본문에서 홍익회의 서비스 내용이나 서비스 품질을 설명했어야 마땅한 일이거늘, 서비스 내용은 없고 자신들의 ‘사업종목’만 나열하고 있으니 뜻밖일 수밖에. 광고의 기본 원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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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원호대상자에 대한 생계부조, 생업보도, 직업알선, 육영사업, 장학사업, 역 구내와 열차 내에서의 상품판매, 토건사업, 철도소운영업, 항만운영 및 하역사업, 인쇄·출판·세탁 및 피복·기타 제수(製修)공업, 철도용품의 제수가공, 자동차 검사·수리사업, 광고사업 같은 사업영역을 죽 나열했다. 지면의 왼쪽에는 “원호의 손길”이라는 카피를 두 손으로 감싸는 비주얼을 보여주며 각종 수익사업에서 얻는 이익금은 “불행한 사람들을 도웁는 재원”으로 보람 있게 쓰인다고 강조했다.

홍익회의 이력을 잠깐 살펴보자. 1936년 7월 철도청 공상퇴직자와 순직 유가족을 돕는다는 취지로 재단법인 철도강생회(鐵道康生會)가 설립되었고, 1943년에 교통강생회로, 1967년 7월 1일에 홍익회(弘益會)로 이름을 바꿨다. 2004년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Korail)로 체제를 바꾸면서 같은 해 12월 2일 홍익회에서 유통사업만 따로 분리해 한국철도유통(Korvans)이라는 법인을 설립했고, 2007년 4월 1일에 사명을 코레일유통(주)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주요 사업은 유통 및 광고업으로, 전국의 철도역에서 스토리웨이(StoryWay)라는 편의점과 상업시설을 운영한다.

지금처럼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기차를 타고 두어 시간쯤 지나면 정말로 기다려지는 것이 객차 앞문을 활짝 열며 나타나는 홍익회 아저씨였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낯선 풍경에 눈길을 주며 지나가는 홍익회 아저씨를 안 보는 척하다가도 사람들은 자기 앞에만 오면 새삼 몰랐다는 듯이 군것질거리를 골랐다. 망설이다가도 주섬주섬 골라내던 눈길들, 손길들. 삶은 계란, 심심풀이 땅콩, 도시락, 세 개 묶음의 주황색 귤망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

대전역의 명물이던 가락국수 맛도 잊을 수 없다. 기관차(증기기관)에 급수를 하고 머리를 돌리느라 10분 정도 잠시 정차한 사이에 후루룩 말아먹는 재미가 쏠쏠했던 추억의 가락국수. 이제 고속철도의 시대라 그런 짬도 없지만 홍익회 아저씨들은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요즘은 먹을 게 많아 잘 드시지는 않겠지만 이번 추석에는 오며가는 대중교통에서 추억과 함께 ‘삶은 계란’의 참뜻도 한번 곱씹어보시기를.

글·김병희(한국PR학회 회장·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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