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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걷기여행]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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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의 겨울이 한창이다. 달천(괴산호)을 길게 둘러싼 소나무숲이 긴 그늘을 내린다. 그 그늘 사이로 푸른 하늘이 내려와 용의 비늘처럼 빛난다. 산막이옛길의 달천은 용을 닮았다.

산막이옛길이 시작되는 차돌바위나루에서 괴산수력발전소 방향이 용머리에 해당한다. 산막이옛길을 따라 용이 틀임을 시작해 산막이나루를 지나 굴바위나루에서 한 번 더 긴 몸통을 틀어주고 덕평마을에서 가는 꼬리로 흘러간다. 산막이옛길은 마치 용의 몸을 타고 걷는 것처럼 신나는 여행이다. 가까이 닿고 싶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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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이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산에 막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산막이마을’이다.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까지 이어진 4킬로미터로 10리 길이다. 산막이마을 사람들이 바깥마을과 소통하던 길이었다.

1957년 이승만 정권 시절에 만든 댐이자 수력발전소인 괴산댐이 생긴 뒤 달천의 물 수위가 높아져 괴산호가 된다. 물이 얕을 때에는 섶다리로 다녔지만 호수가 생긴 뒤에는 나룻배로 건넜다. 나룻배가 여의치 않은 때에는 호수 기슭에 난 길을 따라 바깥마을로 나갔다.

산막이마을 사람들은 50년 넘게 다닌 호수 기슭의 길을 가꿔 2011년 11월 11일에 산막이옛길로 개장했다. 괴산군 총인구가 3만8천명인데 2013년에 이 길을 다녀간 인구는 약 140만명에 달한다. 괴산군 인구의 36배가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제는 먼 바깥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자연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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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2개 코스… 괴산호엔 유람선

산막이옛길은 주차장에서 시작해 노루샘, 앉은뱅이 약수, 고공전망대, 물레방아, 산막이마을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로 편도 4킬로미터이다. 사실 사람들이 이리 많이 방문하는 이유는 단지 아름다운 산책로 때문만은 아니다. 등산로 2개 코스가 연계돼 있어 취향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고, 괴산호 뱃길 따라 유람선이 다니는데 그 고요한 풍경이 그만이다. 호수에 산그늘이 길게 드리우는 오후 시간이 더 깊게 다가온다.

시작점인 산막이옛길 주차장을 지나면 식당들이다. 식당을 벗어나면 괴산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가게들을 지나 언덕에 올라선다. 관광안내소다. 안내소 옆에 산막이옛길 지도가 설치돼 있다. 산책로에서 뻗어나간 등산로를 살펴본다. 등산을 좋아한다면 주차장 출발 노루샘에서 등잔봉(450미터)을 올라 한반도 전망대에서 환벽정이 있는 한반도 지형을 조망하고 천장봉(437미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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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봉에서 삼성봉(550미터)을 오른 뒤에 산막이마을로 내려오는 등산 1코스다. 산막이마을에서 옛길 산책로를 따라 원점 회귀한다. 총 10킬로미터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삼성봉에서 산막이마을로 내려오는 약 1킬로미터 구간의 경사가 심하다. 산막이마을까지 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다. 겨울은 해가 짧으므로 아침 일찍 걷는다. 등산 2코스는 1코스 한반도 전망대까지 동일하다. 한반도 전망대에서 천장봉 정상을 오르지 않고 도중에 진달래능선으로 내려온다. 진달래동산에서 산막이옛길과 만난다.

진달래동산에서 산막이옛길 주차장까지 2.7킬로미터이고, 산막이마을은 1.3킬로미터이다.

관광안내소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소나무 뒤편 언덕으로 검은색 유건을 쓴 사람들이 시제(時祭)를 지낸다. 제를 지낸 사람들이 자리를 권하고 제사 음식을 나눠준다. 무덤 뒤로 괴산호가 겨울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오랜만에 넉넉한 풍경을 마주한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산책로를 향한다. 길 옆사과나무 과수원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누렇게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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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굴·앉은뱅이 약수 등 구전의 명소 가꿔

산막이옛길은 이야기가 풍부한 길이다. 호랑이굴, 여우비 바위굴, 앉은뱅이 약수 등 26개 명소를 지정해 안내판을 세웠다. 26개 명소 중에는 예로부터 마을에 구전돼 오던 이야기를 그대로 쓴 곳도 있고, 새롭게 스토리텔링한 곳도 있다. 몇 가지는 흥미를 유발한다. 가족 여행객은 명소를 찾아보며 색다른 추억을 쌓아도 의미가 있겠다.

추억의 수동펌프를 사용해 콸콸 쏟아지는 물에 손을 씻고, 고인돌을 구경한 뒤에 살짝 에둘러 난 길을 오른다. 괴산호다. 산들에 둘러싸인 깊은 호수가 보이자 등산객들이 기쁜 함성을 지른다. 산들이 물길을 내어준다. 바람이 불지 않아 호수는 거울처럼 고요하다. 그 위에 푸른 하늘이 살짝 발을 담그고 떠 있다. 길은 사람들로 번잡할지라도 호수는 고요하다. 소나무들이 일제히 호수를 향해 긴 팔을 뻗었다. 햇볕이 가장 많이 드는 곳으로 생명이 모인다. 수면에 닿은 햇볕이 용의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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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정상에 오르자 소나무 사이로 그네를 매었다. 놀이터에 매어진 알록달록한 그네가 아니라 단옷날에 치마 펄럭이며 타던 그네다. 당시를 기억하는 여인들이 그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여인들이 그네를 탄다. 그네 뒤로 출렁다리가 반긴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에 정사목을 보고 온다.

설명에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한 소나무’라고 적혀 있다. 조금 시시한 정사목을 뒤로하고 스릴 넘친다는 소나무 출렁다리로 향한다. 길이 130미터, 소나무 사이로 난 다리를 조심스럽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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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담을 지나 노루샘이다. 노루샘에서 등잔봉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나는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느릿느릿 걷는 산책자에게 어울리는 코스는 산책로를 따라 산막이마을까지 걷는 것이다. 이 길이 짧다 생각되면 산막이마을에서 굴바위농원까지 이어진 호젓한 충청도양반길 1코스를 30여 분 걷는다. 산막이옛길이 잘 가꾸어진 나무데크 산책로라면, 2킬로미터 남짓한 충청도 양반길은 옛 산길 모습을 간직했다. 또한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무척 호젓하다. 양반길은 굴바위농원에서 끊겼기 때문에 뒤돌아 산막이나루로 나온다. 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차돌바위나루로 회귀한다. 시간이 맞으면 관광유람선을 타고 선유대(각시바위)와 신랑바위까지 돌아보면 금상첨화다.

호랑이굴 인근부터 나무데크가 시작된다. 호랑이굴에는 2개의 호랑이 조형물이 있다. 매 모양처럼 생겼다는 매바위를 올려다보고, 여름철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를 피한다는 여우비 바위굴을 지난다. 40년생 미녀 엉덩이 참나무를 지나 앉은뱅이 약수에서 다리를 쉰다. 앉은뱅이가 약수를 마시고 벌떡 일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호수전망대, 고공전망대를 지나 물레방아에서 식혜로 목을 축인다. 산막이마을이다. 나루터 솔숲이 반긴다. 14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민박식당 등을 운영한다. 마을을 둘러보고 충청도양반길을 걷는다. 해는 산 뒤로 기울고, 용을 닮은 괴산호 물색은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참 고요하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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