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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걷기여행] 충남 부여 사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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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400여 년이 흘렀고, 멸망한 나라는 여전히 안개에 쌓여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당신이 돌덩어리 하나에서 무수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몽상가라면, 또는 하나의 사건에서 놀라운 추리력을 끌어낼 수 있는 탐정 셜록 홈즈의 자질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비백제시대 흔적을 따라 걷는 길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사비길은 시외버스터미널 택시정류장 앞에서 시작한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동엽 시인의 생가를 들러 그의 시와 삶을 가슴으로 느끼고, 백제 별궁 연못인 궁남지에서 연꽃과 수련 빛깔에 발을 담근다. 서동공원 백제오천결사대충혼탑에서 계백의 조각상에 압도당하고, 능산리고분군에서 고분 1호분 컬러 벽화를 구경한다. 금성산 정상에서 부여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의 세밀함에 찬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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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정림사지 5층석탑을 지그시 바라보고 부소산 낙화암에서 장중한 백마강에 마음을 흘려 보낸다. 다시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원점으로 돌아오는 약 15킬로미터 거리이다.

이 길은 코스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걸어도 좋다.

유적·유물이 부여 시내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걷다 보면 만나게 돼 있다. 먼저 부소산으로 향한다. 부소산은 해발 106미터밖에 안 되는 야트막한 산이지만 사비의 진산이다. 부소산성은 산 정상을 중심에 놓고 7~8부 능선을 흙으로 둘러싸 만든 토성으로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둘레는 약 2.5킬로미터이며 돌아보는 데만 두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돌아보면 꼬박 반나절이 소요된다. 그래서 가볍게 걷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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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 종합관광안내소 사물함에 무거운 짐들을 맡겨 놓고 출발한다. 매표소를 지나자 울창한 숲이 반긴다. 싱그러운 단풍나무 잎이 산책로에 그늘을 드리운다. 바람에 단풍잎들이 사부작 사부작 흔들린다. 벚나무 아래에는 다람쥐가 사람들이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까맣게 익은 버찌를 주워 먹는 데 정신이 팔렸다. 버찌 주워 먹는 다람쥐 옆에서 이순선 문화관광해설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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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태자가 걸었다는 태자골 숲길

“부소산성은 평화 시에는 백제 왕족의 후원 산책로였어요. 태자골 숲길을 거닐고, 영일루에서는 해를 맞이하고요, 송월대에서는 백마강에 달을 보냈죠. 요즘 힐링이라는 말을 무척 많이 쓰는데, 이곳이 바로 왕들의 힐링 장소였어요.”

해설사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1,400년 전의 길을 걷는다. 산성 내 사비길을 따라 백제의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삼충사를 둘러본다. 사자루는 1919년에 임천군 관아의 정문을 옮겨놓고 사‘ 자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자리에는 사비시대에 달맞이하는 ‘송월대’가 있었단다.

사비길을 잠시 벗어나 곡식을 저장해 놓았던 군창지를 둘러보고 다시 사비길을 걷는다. 백제 태자가 걸었다는 태자골 숲길이 부소산성 내에서도 가장 고즈넉한 길이다. 영일루에는 백제시대 계룡산 연천봉의 일출을 바라보던 영일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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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백화정과 천년송이 눈길을 끈다.

천년송이 긴 가지를 드리워 바위에 그늘을 내린다. 활엽수처럼 햇볕을 다 가리지는 못하나 소나무 향기는 바위를 덮고도 멀리까지 풍긴다. 그 향기를 맡으며 백화정 뒤 낙화암에 내려선다. 의자왕과 3천 궁녀가 백마강으로 꽃잎처럼 떨어졌다는 곳.

정림사지 5층석탑 안에는 뜰보리수 열매가 빨갛게 익어간다.

붉게 익는 보리수나무 맞은편에 국보 제9호 정림사지 5층석탑이 위엄을 자랑한다. 사비시대에 시가지 중앙에 세워졌다는 석탑은 한번도 해체 복원되지 않고 당당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백제가 멸망할 당시에 사찰과 탑 1천여 개가 한 달 내내 불길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탑이다. 높이 8.33미터, 화강암 145조각으로 이뤄졌다. 늘 변함없는 모습의 정림사지 5층석탑은 옛날부터 부여 사람들의 약속 장소로 애용되었다. 다른 문화재와 달리 시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니 시민들이 더 애착을 가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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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 연못 궁남지엔 다양한 수련 꽃피워

정림사지 5층석탑에서 국립부여박물관으로 향한다. 국립부여박물관 뒤편에 금성산으로 향하는 부여길 안내판이 보인다. 금성산은 내일로 미루고 국립부여박물관을 둘러본다. 모든 박물관에는 그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이 있게 마련이다. 부여박물관의 경우는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이다.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이 향로는 높이가 61.8센티미터에 이른다.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 대신 향로를 물고 떠받들고 있다. 몸체는 연꽃 모양을 하고 있으며 정상 부위에 봉황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응시한다.

몸체는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을 표현했다. 삼신산에는 호랑이·사슴·코끼리·원숭이·멧돼지 등 동물 39마리와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신선 5인과 산중 신선 등 인물 16명이 있다. 나무 여섯 그루, 바위, 산, 계곡 등 도교 세계를 세밀하게 새겨놓았다. 향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멍은 12개. 주악신선을 잘 살펴보면 향 구멍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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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로 향한다. 가는 길에 벚나무, 뽕나무, 뜰보리수나무의 열매들이 까맣거나 혹은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궁남지는 부여 남쪽에 위치한 별궁 연못이다. 원래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으로 알았는데, 연구를 통해서 백제시대 인공 연못으로 밝혀졌다.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 35년에 궁성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파서 물을 끌어들이고 사방에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연못 주변에서 석축,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어 궁남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연못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꽤 큰 연못으로 추정한다.

궁남지 주변으로 12만평의 연꽃밭이 조성돼 있으며 이 연꽃밭만 돌아봐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7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서 9월 초까지 꽃을 볼 수 있다. 7월에는 연꽃 축제도 열린다. 지금은 다양한 수련이 꽃을 피웠다. 특히 노란 수련이 만개했다. 연꽃밭을 둘러보고 궁남지 중앙에 자리한 포룡정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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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연꽃밭은 주차장 쪽보다는 오천결사대충혼탑으로 가는 길이 연꽃도 많고 관광객도 덜 붐빈다. 그 길을 따라 서동공원 오천결사대충혼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하나 찍는다. 계백장군과 몇몇 장수들이 출전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마치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왕포천을 따라 백제왕릉원으로 걸어간다. 햇볕에 막 심은 모가 연둣빛으로 빛난다. 농부가 그 사이에서 뜬모를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그 옆을 지나간다. 왕포천은 무려 2킬로미터에 달한다.

능산리 절터와 능산리고분군은 붙어 있다. 능산리 절터 위로 나성을 발굴 중이다. 파란색 천이 덮여 있어 나성의 위치를 잘 파악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나성과 부소산성을 이어본다. 이리 겹겹이 성을 쌓아서 대비했는데도 불구하고 백제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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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산리고분군은 ‘백제왕릉원’

나성 아래로 능산리 절터가 자리한다. 백제 위덕왕 13년에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던 절이고 백제가 멸망하면서 이 절도 폐허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금동대향로와 절이 창건된 연대를 알 수 있는 국보 제288호 ‘창왕명석조사리감’이 출토되면서 능산리고분군이 왕실 묘지라는 사실에 힘을 실어주었다.

10능산리고분군 입구에 1호분을 똑같이 재현해 놓은 무덤을 구경하고 계단을 오른다. 능산리고분군을 백제왕릉원이라 부른다.

백제왕릉원은 의자왕과 태자 융의 묘를 나란히 조성했다. 의자왕과 태자 융은 백제가 멸망하면서 당나라로 끌려가 중국 하남성 낙양사에서 사망한다. 1995년 부여군은 백제 의자왕 묘 찾기 사업을 벌였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나 태자 융의 묘는 찾았다. 결국 의자왕이 묻혔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의 흙을 담아와 태자 융의 묘와 함께 모셨다. 의자왕과 태자 융의 묘를 지나 동쪽으로 걸어가면 고분 7기가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묘이다. 겉모습은 원형봉 토분인데 무덤 안은 굴식돌방무덤이다. 이 중 1호기에는 연꽃 모양의 벽화가 그려져있다. 벽화에는 색깔이 남아 있다. 1호기에서는 볼 수 없고 입구에 똑같이 재현해 놓은 고분에서 볼 수 있다.

부여 사비길은 끝나지 않은 길이다. 백제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계속되는 한 백제의 역사는 계속 깊고 넓어질 것이다. 백제는 660년에 멸망했지만 1,400년 뒤의 후속들에 의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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