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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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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생님, 제가 조그맣게 매실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매실이 익는 5월 말이나 6월 초쯤에 선생님들을 꼭 초대하고 싶어요.” 올해 1월 중순 ‘전국독서교육 교사연수’에 참여했던 선생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연수 진행을 비롯해 늘 애써주는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뜻에서다. 정말 고마웠다.

연녹색 매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 달빛이 그윽하게 내려앉아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매실밭. 그 사이를 걸으면서 매실을 문득 만지작거려 본다. 그러다가 어느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는다.

미리 준비한 소박한 술상을 앞에 두고 술잔을 몇 순배 나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실밭 전체를 마신 듯 취해 오는 기분이었다. 한겨울 추위에 진행되던 행사 때문에 얼어붙은 듯한 피로가 그야말로 어느 틈에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며칠 전 그 선생님이 약속대로 초대장을 보내 왔다. 매실이 잘 익었으니 몇 분이 언제쯤 오실지 알려주면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간 잊었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행복한 기분이 온몸 가득 퍼져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초대에 선뜻 응하기는 어려웠다. 새 학기를 시작한 지 꽤 되었지만 학생들을 돌보느라 모두 여전히 바빠서다. 그러니 정작 초대를 받은 선생님들 모두가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편도만으로도 짧게는 세 시간이거나 길게는 다섯 시간이 걸리는 길이어서 일정이 부담되기도 했다.

선생님들끼리 의논하며 초대에 응할 수 있는 분을 찾았다. 하지만 학생들을 주말에 별도로 지도하기에 시간이 안 난다는 선생님, 정말 가고 싶으나 마음 편히 쉬고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못 가겠다는 선생님, 학생들을 가르칠 교안 준비로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선생님까지…. 혹한 속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던 매실밭, 막상 초대장이 왔지만 정작 갈 사람은 하나도 없다니?

어떻게 해야 할까 논의를 거듭하다가 결국 정중하게 사양하는 편지를 전해 드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었다. “선생님께서 초대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매실밭에 꼭 가고 싶습니다만, 여러 여건과 형편 때문에 참여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모쪼록 마음 상하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다음 기회를 찾아보겠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다. 혹한을 뜨겁게 만들고, 온갖 피로를 풀어준 매실밭 초대 약속을 이렇게 보내다니 너무나 아쉬웠다.

지난 일요일 아침, 동네 공원 한구석에서 매실을 따느라 여념이 없는 중년의 부부가 보였다. 비탈진 언덕에 심어진 매화 나무들을 마구 흔들고, 장대로 매실 가지들을 함부로 꺾는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나무를 심는 사람 따로 있고, 열매를 따 먹는 사람이 또 따로라 해도 그렇지. 공원에 있는 매실들을 바구니 가득 담아 가서 뭘 하자는 것인지? 매실이 너무 많이 달려 가지들이 축축 늘어지는 공원은 기대할 수 없을까. 떨어진 매실 몇 개를 주워 들고는 매실밭 초대장을 떠올리는 행복한 순간을 기다린다. 매실밭까지 가지 않아도 사랑과 존경, 배려가 가득한 감사의 매실밭이 도시 곳곳에서 우리를 초대했으면 좋겠다.

글·허병두(숭문고 교사·책따세 공동 대표)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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