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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이야기] 조국 위해 순절한 인물들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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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해마다 6월이면 전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전쟁인 6·25전쟁이 일어난 달이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기억을 다짐하는 현충일도 6월 6일이다. 전통시대에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포상이 이어졌다. 조선 세조대의 학자 양성지(梁誠之)는 상소문에서 “신라의 풍속에는 전쟁에서 사망한 자는 벼슬을 한 등급 올려주어 명예롭게 하고, 유가족들은 관직과 녹(祿)으로써 부양해 우대하게 하였다. 그래서 위국진충(爲國盡忠)의 용사들이 생겨남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여 신라시대 이래로 전란의 희생자에 대한 포상이 이루어졌음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왜란이나 호란과 같은 큰 전란을 당한 후 전란 당시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현창(顯彰)작업 수행에 큰 힘을 기울였다.

유공자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하고 이들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과 사당을 세웠다. 영조대에는 충신과 열사의 자녀를 우대하기 위한 시험인 충량과(忠良科)를 실시하였으며, 임진왜란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전쟁 중에 희생된 사람들의 전공을 기리는 <임진전란도(壬辰戰亂圖)>와 같은 그림을 시대별로 제작하기도 했다.

<임진전란도>는 1834년(순조 34년)에 화원 이시눌이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과 다대포진의 전투 장면과 주변의 지리적 환경을 묘사한 1축의 족자 그림이다. 임진왜란의 전투 상황을 다룬 그림으로는 동래부 소속 화원 변박이 1760년대에 전대의 작품을 모사하여 그린 것으로 보이는 <부산진순절도>와 <동래부순절도>가 있는데, <임진전란도>는 이 그림을 참고하여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에 담고 있는 전투는 근경(近景)의 다대포진과 원경(遠景)의 부산진 두 성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 장면이다. 이 중에서 화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원경의 부산진 전투다. 전체 그림은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부감법(俯瞰法)을 써서 모든 장면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하였으며, 조선군에 비해 왜군의 수를 훨씬 많이 그려넣어 군사적으로 조선이 열세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각 인물들을 계급과 역할에 따라 그 크기를 차등화하여 그리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그림의 중심부에는 부산진과 다대포진을 빽빽이 둘러싼 왜적의 모습과 엄청난 물량의 선박이 전투에 동원된 모습을 치열한 전투 상황과 함께 묘사하였다. 남문 밖에는 왜병의 시체가 쌓여 있는 것도 기록하였으며 ‘수(帥)’ 깃발 뒤편에는 한 여인이 자결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해안과 연결된 산수의 모습도 매우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임진전란도>는 주요 상황을 표현한 그림과 함께 순절한 인물들에 관한 후대의 추숭(追崇)까지 기록하고 있다. 우측 상단에는 부산진의 함락과 함께 순절한 부산진 첨사 정발(1553~1592년)과 그의 첩 애향, 노비 용월 및 함께 순직한 사람들의 비석과 제단을 넣었으며 좌측 상단에는 다대포 첨절제사 윤흥신(?~1592년)과 함께 순절한 사람들의 비석과 제단을 그려넣은 뒤 설명을 더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정공단(鄭公壇)’은 정발이 순절한 곳에 1766년 부산진 첨사 이광국이 세웠다는 것과 매년 4월 14일에 첨사가 제사를 지내 왔음을 알 수 있다. 전투에 관계된 구체적인 지명, 전투 후에 제단과 비석이 들어선 상황까지 기록하여 임진왜란 이후 이 지역이 점차 성역화되어 가는 모습도 접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240년이 지난 시점에도 이런 그림을 제작한 것에서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의 기억을 계속 상기시켰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의 시기가 언제라도 닥칠 수 있음을 경계하게 하고, 순국 신하들에 대한 포상 조치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충(忠)의 이념을 확산시키려 한 조선왕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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