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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걷기여행] 한양도성길 4코스 인왕산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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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길 4코스 인왕산 구간은 숭례문에서 시작한다. 지난 4월 27일 종로구에서 운영하는 서‘ 울 한양도성 스탬프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예약 시작일에 예약했는데 다음날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그 주에 숭례문 홍예(虹霓·무지개 모양 통로) 앞 오후 1시 30분 집결과 우천 및 기상특보로 인해 프로그램이 취소될 수 있다는 안내 문자도 받았다. 다시 연속해서 운동화, 편한 복장과 마실 물을 준비하라는 것과 선착순 예약이므로 참가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취소 연락을 해 달라는 문자였다.

무료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문자 몇개를 받고 나서는 꽤 체계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당일 아침에는 한양도성 해설사에게서 집결 시간과 숭례문 가는 대중교통 안내 문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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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문자 때문인지 집결 시간보다 20여 분 먼저 도착해 숭례문을 둘러보았다. 2008년 방화로 오백년 역사가 5시간 만에 불타버린 숭례문이 5년 여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지난해 5월 다시 문을 열었다. 딱 1년이 되었다. 그 사이 부실 복원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불거져 안타까웠지만 숭례문이 우뚝 서 있으니 서울이 서울답게 느껴진다.

1시 30분, 홍예 앞에서 참가자 명단을 확인한다. 신청은 80명이 했는데, 흐린 날씨 탓에 참가 인원이 약 50명에 불과했다. 해설사는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소속의 순수 자원활동가들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세 그룹으로 나눠 해설사 3명을 따라나선다. 해설사는 한양도성 옛지도 ‘수선전도(首善全圖)’ 자료 사진을 보여주며 참가자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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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잇는 ‘한양도성’

숭례문은 태조 7년에 완성됐다. 이 숭례문이 완성되면서 태조 이성계(1335~1408)가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에 궁궐과 종묘사직 자리를 잡고 쌓기 시작한 한양도성이 마무리된다.

한양도성은 조선 수도인 한양을 둘러싼 도시 성곽이다. 한양도성은 태조 5년(1396)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8월 13일부터 9월 30일까지 2회에 걸쳐 쌓았다. 전국에서 동원된 백성이 무려 19만 9,260명에 달한다. 도성은 세종 때에 이르러 다시 새롭게 단장한다. 전국에서 백성 32만2,400명과 기술자 2,211명, 수령과 인솔자 115명을 불러들여 흙으로 쌓았던 성곽을 전 구간 석상으로 고쳐 쌓았다. 숭례문도 이때 헐리고 새롭게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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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에 숭례문 홍예로 전차가 다닙니다. 그러다가 1907년 일본 왕세자 요시히토의 방문을 빌미로 숭례문 좌우성벽이 헐립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숭례문 초소로 향한다. 사람들이 해설사가 나눠준 지도에 스탬프를 찍는다. 스탬프 찍는 곳은 숭례문 초소에서 왼쪽으로 약 10미터 떨어져 있다.

한양도성은 북악산(백악), 낙산(낙타), 남산(목멱), 인왕산, 내사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이다. 현재 18.6킬로미터 중 70퍼센트인 12.8킬로미터가 남아 있거나 중건되었다. 평균 높이는 약 5~8미터다. 4대문과 4소문 도합 8문이 있다. 문 이름은 흥미롭게도 유교에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따서 동서남북 문에 적용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 서대문은 돈의문,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만 별도로 숙청문으로 지었다. 4소문은 각각 홍화문, 광희문, 소덕문, 창의문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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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을 나와서 YTN 건물 앞 서울역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숭례문이 보이는 삼거리 인도에 남지터 표석이 있다. 남지는 연못이다. 풍수지리상 관악산은 화기가 매우 강하단다. 그래서 관악산 화기를 막기 위해 숭례문 앞에 인공 못을 만들었다. 그러나 도성 안에는 크고 작은 불이 일어났고 제 역할을 못한 남지는 메웠다가 다시 복원하기를 몇 차례 했다. 이것 외에 남지가 복원되고 메워지는 데 따른 다양한 속설이 전해진다. 남지를 복원하면 남인이 성한다고 하여 복원한 적도 있고, 반대로 역적의 집터라고 연못으로 만든 적도 있단다.

해설사의 시선이 남지터에서 염천교 가는 길인 칠패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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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패는 조선 후기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이 한성부 지역을 8패로 나눠 순찰하던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칠패는 서울 3대 시장의 하나인 칠패시장으로 유명하다. 마포가 가까웠기 때문에 어물시장이 발달했다. 지금은 차가 다니는 거리지만 당시에는 숭례문 밖이 시끌시끌한 어시장이었다. 이 칠패시장이 도성 안으로 들어가서 남대문시장이 되었다.

해설사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도성은 남았지만 그 주변에 있는 문화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곳에 무엇이 있었다는 짤막한 소개가 적힌 표석만 덩그러니 자리한다. 그래서 무심코 지났을 곳들이 해설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연못이 되고 왁자지껄한 난전이서는 칠패시장이 된다. 외국 공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손탁호텔이 생겨나고, 건물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프랑스 공사관이 턱하니 서 있다. 마치 도성을 중심에 놓고 가지가지 색상의 조각보를 이어 붙인 것처럼 역사의 조각들이 맞춰진다. 조각이 맞춰지며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이 작동하여 손탁호텔을 세운다. <톰 소여의 모험>을 쓴 작가 마크 트웨인이 손탁호텔에 머물며 글 쓰는 장면을 상상한다. 손탁(A.Sontag)이 고종에게 커피를 소개했다는 이야기에 쓴 커피를 마신 고종이 시음평을 어떻게 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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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윤동주 시인의 언덕 등 볼거리

4코스 인왕산 구간은 남지터, 칠패로, 소의문터, 독립신문사터, 러시아 대사관, 정동, 정동제일교회, 손탁호텔터, 일제 강요로 신사참배를 하던 곳, 프랑스 공사관터, 서대문 성벽 옛터, 돈의문터, 경교장, 월암근린공원 성곽, 홍난파가옥과 베델집터, 국사당, 선바위와 부처바위, 인왕산 정상,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5.3킬로미터밖에 안 되지만 근·현대사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거리다. 4시간 30분이 재미나게 훌쩍 지나간다.

8해설사는 독립신문사터에서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거지가 된 서재필의 장인이 그를 찾아왔는데 2달러를 주고 쫓아냈다는 일화다.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서재필이 일본을 등에 업고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역적인데, 그에게 국고를 주어 신문을 만들게 했다는 이야기가 더 놀라웠다.

강북삼성병원 안에 있는 경교장을 나와서 월암근린공원으로 오른다. 월암근린공원에 이르러서야 성곽터가 아닌 성곽을 만난다. 숭례문부터 월암근린공원 입구까지는 성곽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그 흔적을 따라 걷는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한양도성을 쌓은 석성 축조법을 볼 수 있다. 도성은 네 시기에 걸쳐 축조된다. 태조 때 쌓은 석성은 아래쪽에 대형 화강암을 놓고 석상을 불규칙한 크기로 쌓았다. 세종때는 동글동글한 대형 석성을 아래에 놓고 그 위에 작은 석상을 촘촘하게 쌓았다. 숙종 때는 세종 때보다 훨씬 발달했는데 돌을 정사각형으로 다듬어서 수직이 되게 쌓았다. 순조 때는 석성 방향을 정방향으로 쌓아 훨씬 체계적인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쌓은 화강암 석성은 오래된 돌 주변에서 하얗게 빛난다. 시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반짝거리는 석상도 백년이 지나면 후손들에 의해서 축조법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게 될 것이다.

월암근린공원에서 다리쉼을 하며 홍난파가옥을 둘러본다. 홍난파가옥 뒤편으로 커다란 나무 하나가 보였다. 권율 장군이 직접 심은 은행나무라고 한다.

인왕산에 올라 한눈에 감상하는 서울풍경

은행나무 옆으로 오래된 서양 가옥이 보인다.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딜큐샤’라는 가옥으로 당시 한양 최대의 벽돌 저택이다. 딜쿠샤는 일제 강점기 UPI 서울특파원으로 활약했던 앨버트 테일러가 지은 것으로 테일러는 1919년 3·1운동과 독립선언서를 해외에 알린 인물이다. 테일러는 이 일로 일본인의 눈에 나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결국 미국으로 추방당한다. 이후 오랫동안 무연고 건물로 방치되고 ‘귀신 나오는 집’으로 불렸던 딜쿠샤는 테일러의 아들이 2006년 한국을 방문, 관련 자료를 서울시에 기증하면서 원래 이름을 되찾고 사연도 알려지게 됐다.

9홍난파가옥 오른쪽으로 난 길을 통해 성곽길을 오른다. 성곽 안쪽으로 걷다가 암문을 통해서 성곽 밖으로 걷는다. 성곽 안쪽은 성곽이 짧기 때문에 밖으로 걸어야 성곽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경관 조망장소 인근에서 국사당, 선바위, 부처바위를 올려다본다. 일본은 조선신궁을 남산 중턱에 세우면서 남산 팔각정에 있던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겼다. 옮기면서 하늘에 제를 지내는 국사당을 태조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위한 개인 사당으로 격하시켰다고 한다.

성곽 끝 소실점에는 남산이 우뚝 솟았다. 기차바위 뒤로는 삼각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북악산·낙산·남산이 한눈에 잡힌다. 인왕산에 올라서야 촘촘하게 살아가는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양도성을 한 바퀴를 돌며 서울의 역사를 마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내사산 산그늘에 기대 아래위층으로 옹기종기 살아가는 사람들, 역사 속을 걷고 있는 우리가 더 애틋할 듯하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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