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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이야기] 왕명으로 시작한 우리 의학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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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의학자 하면 누구나 허준(許浚·1539~1615)을 떠올린다. 그리고 200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그의 저술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우리 의학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동의보감>이 선조의 왕명을 받아 편찬이 시작되고, 그 완성에도 광해군의 지원이 있었던 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동의보감>의 편찬 배경과 완성까지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 본다.

1596년 국왕 선조는 어의(御醫) 허준을 불러 온갖 처방을 덜고 모아 하나의 책을 만들 것을 명했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국토가 황폐화되고 백성을 버린 채 의주까지 몽진을 간 선조는 도성에 다시 들어와 백성의 모습을 보자 의학의 정비를 통하여 백성들을 구제할 방안을 생각했고, 허준에게 그 책임을 맡긴 것이다. <동의보감> 서문에는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고 물러나 유의(儒醫) 정작(鄭 ), 태의(太醫)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기구를 설치하고 편찬을 시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조가 허준에게 책임을 맡긴 것은 의학뿐만 아니라 허준이 경전과 역사에도 박식했기 때문이었다. 선조 때의 의학서 <의림촬요(醫林撮要)>에는 “허준은 본성이 총민하여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경전과 역사에 박식했다. 특히 의학에 조예가 깊어서 신묘함이 깊은 데까지 이르렀다. 사람을 살린 것이 부지기수다”라고 하여 허준이 인문학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의학을 공부한 인물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의관으로 진출하는 기본적인 통로는 잡과의 하나인 의과(醫科)에 합격하는 것이지만, 관료들의 추천을 받아 내의원(內醫院)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허준은 유희춘의 천거를 받아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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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한 선조의 의학서 편찬 프로젝트에 책임을 맡은 허준은 1596년 본격적으로 자료 수집을 하며 작업을 준비해갔다. 그러나 이듬해인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작업은 일시 중단되었고, 1601년에 들어와 작업이 재개되었다. 작업 재개 시점부터는 허준이 단독으로 작업을 하였고, 선조 사후 광해군 즉위 후에도 허준에 대한 지원은 계속 이어져 마침내 1610년 그 완성을 보게 되었다. 당시의 정황은 <광해군일기>의 기록에 전하고 있다. “전교하기를, 양평군(陽平君) 허준은 일찍이 선조(先朝) 때 의방(醫方)을 찬집(撰集)하라는 역사가 된 정책 허준의 <동의보감>

명을 특별히 받들고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심지어는 유배되어 옮겨 다니고 유리(流離)하는 가운데서도 그 일을 쉬지 않고 하여 이제 비로소 책으로 엮어 올렸다. 이어 생각건대, 선왕께서 찬집하라고 명하신 책이 과인이 계승한 뒤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내가 비감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허준에게 숙마(熟馬) 1필을 직접 주어 그 공에 보답하고, 이 방서(方書)를 내의원으로 하여금 국(局)을 설치해 속히 인출케 한 다음 중외에 널리 배포토록 하라고 하였다. 책 이름은 동의보감인데, 대개 중조(中朝)의 고금 방서를 널리 모아서 한 권에 모은 다음 분류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다.”

<동의보감>은 당시까지 전해 오던 중국의 의학서들을 섭렵하는가 하면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의림촬요>의 주요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흡수하였다. 특히 정(精), 기(氣), 신(神)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의 양생학적(養生學的)인 신체관과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위주로 한 서술은 의학의 수준을 크게 높였다. <동의보감>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의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 온 중국 사신들이 <동의보감>을 꼭 구입해 갔다는 기록이 보이며 중국과 일본, 대만에서도 <동의보감>은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동의보감>에서 제시한 의학적 처방이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 완성 때 허준의 나이는 이미 72세였다. 그럼에도 허준은 계속해서 백성을 살릴 수 있는 의학서 편찬에 착수하여, 1613년 역병 예방서인 <벽역신방( 疫新方)>과 <신찬벽온방(新撰 瘟方)>을 완성하였다. 조선의 백성들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생의 마지막 시간까지 ‘영원한 현역’으로 헌신했던 것이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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