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술도 좋아하고, 예술적 감수성도 뛰어나고….” 50대 중반인 김씨는 올해 스물다섯인 아들을 대할 때마다 신기한 느낌을 갖곤 한다. 친아들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자신한테는 전혀 없는 특성이 두드러지는 탓이다. 김 씨 자신은 알코올은 입에 대지도 못한다. 그만 그런 게 아니라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술을 마시지 못했다. “밀밭에 가도 취한다”고 할 정도로 음주에 약한 것은 김 씨 집안 내력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고교시절부터 술을 곧잘 마셨다. 아들은 또 음악과 미술 쪽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다. 이런 아들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기까지 할 때도 있다. 아들이 처남, 즉 외삼촌들을 빼다 박은 듯한 모습을 보일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은 평생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데 아들은 외삼촌들과 아주 비슷한 시기, 그러니까 고교 1~2학년 때부터 흡연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들은 ‘친탁’이니 ‘외탁’이니 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실제로 유난히 외가 쪽 특징이 두드러지는 아이가 있고, 친가 쪽 특성이 돋보이는 경우도 있다.

외탁과 친탁은 생물학적으로는 유전 문제와 직결된다. 한데 오묘한 유전자 세계에 대한 이해는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자들조차도 매우 미진한 상태이다. 극히 일부분만 알려지기는 했지만 친탁과 외탁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전학적 힌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염색체의 유전 양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염색체만을 기준으로 따지면, 아들은 친삼촌보다 외삼촌을 닮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많다.
물론 아빠와 외삼촌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외삼촌보다는 아빠를 닮을 확률이 훨씬 높다.
인간의 성염색체는 흔히 X와 Y로 표기된다. 여성은 XX, 남성은 XY라고 하는 식이다. Y염색체에는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성 분화나 발달과 같은 제한된 기능을 가진 소수의 유전자만 있다. 반면 X염색체에는 지능 등 개개인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다수의 유전자들이 존재한다. 아들이 아빠와 외삼촌을 닮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는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지능의 경우 아빠와 외삼촌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물론 성염색체 외에 다른 염색체들도 지능에 관여할 수 있으므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한데 성염색체만으로 논의의 범위를 좁히면, 남자 조카가 외삼촌을 닮을 가능성이 많다는 점은 상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추론된다. 남자의 성염색체는 예외 없이 XY인데, 여기서 X는 의심할 여지없이 모계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남자의 이 X염색체는 외삼촌의 X염색체와 50퍼센트가량 닮았을 확률이 가장 높다. 반면 친삼촌 역시 남성이므로 XY염색체를 갖고 있겠지만 이 경우 친조카와는 Y염색체가 같은 계통일 뿐 X염색체는 전혀 다른 배열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여자 조카-이모’는 서로 얼마나 닮았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자 조카는 이모와 닮을 가능성이 ‘남자 조카-외삼촌’만큼 높지 않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이모와 엄마는 서로 같은 계통의 XX배열을 갖거나 상이한 XX배열을 갖고 있을 수 있다. 만일 엄마와 이모의 XX배열이 같은 계통이라면 딸은 50퍼센트쯤 유전적으로 이모를 닮을 수 있다. 하지만 이모의 XX유전자가 엄마와 다른 계통이라면 여자 조카와 이모의 유전자가 비슷할 가능성은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또 비슷한 맥락에서 ‘여자 조카-고모’가 유전적으로 서로 닮을 수 있는 정도는 ‘여자 조카-이모’와 확률적으로 똑같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보다는 주로 남자들을 중심으로 흔히 외탁이니 친탁이니 하는 말을 예로부터 해 온 것도 그 나름 과학적 근거가 없지 않은 셈이다. 여자들의 경우 친탁·외탁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확률이 똑같은 반면 남자들은 외탁할 가능성이 친탁보다 많은 까닭이다. 물론 성염색체만을 기준으로 하는 얘기다. 일반 염색체의 유전 패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글·김창엽(자유 기고가) 2014.08.25
(도움말 : 성문우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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