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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푸드스토리] 한가위의 맛,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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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추석의 유래는 삼국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추석의 절식(節食) 송편이 전통으로 자리 잡은 자취는 그리 오래지 않다. 송편을 해먹는 시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기록이 존재한다.

조선 인조 때의 문신 신흠은 <상촌고>에 남긴 오언율시에서 “유월이라 유두일 좋은 명절에(佳節流頭日)/ 거친 마을로 내쫓긴 신하로구나(荒村放逐臣)/ 수단을 먹는 것은 토속 따르고(水團遵土俗)/ 송편 빚어 이웃집 선사 하누나(松餠)”라며 송편을 유두절 음식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인물인 이식은 <택당집>에서 송편을 사월 초파일에 바치는 찬선으로 기술하고 있고, 역시 비슷한 연대의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서울 사람들의 봄철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 후에 간행된 이의현의 <도곡집>과 유척기의 <지수재집>에는 삼월 삼짇날의 시식(時食)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에는 잘 변하지 않아 여름 제사상에 올리는 떡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다 조선 후기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 비로소 송편이 추석의 제사음식으로 등장한다. 그 이후에 발간된 <동국세시기>에는 추석의 절식으로도 나와 있지만, 음력 이월 초하루 중화절에 노비들에게 나이 수대로 나누어주는 식선(食膳)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19세기 말에 왕실과 관청에 그릇을 납품하던 공인 지규식이 남긴 <하재일기>에는 추석 무렵 지인과 송편을 나눠 먹고 남긴 “솔향기 풍기는 떡 입에 가득하니(餠松香滿口濃)/ 이러한 가을빛을 애지중지하네(一般秋色愛重重)”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송편이 한가위의 절기 음식으로 정착한 것은 조선말로 짐작된다.

송편에 들어가는 소도 다양하다. 18세기에 나온 <성호사설>에는 콩가루 소를 넣는다고 했고 19세기 초의 <규합총서>에는 팥, 꿀, 계피, 후추, 건강말(말린 생강가루) 등을, 그 후의 <동국세시기>에는 콩, 팥, 검은콩, 꿀에 대추, 미나리도 들어간다고 했다. 19세기 말의 <시의전서>에는 거피팥고물, 녹두고물에 꿀·대추는 물론 밤도 넣는다고 했고 대한제국 시절에 나온 <부인필지>에는 잣과 호두도 올라 있다.

궁에서도 송편을 해먹었던 모양인데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1795년의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나오는 ‘각색 송병’에는 특이하게 돼지고기와 닭고기에다 표고·석이까지 속 재료로 기록되어 있다. 송편은 지역에 따라 크기도 다른데 대체로 북쪽 지방에서는 크게 빚었고 남쪽에서는 작고 예쁘게 만들어 먹었다.

송편을 송병(松餠) 또는 송엽병(松葉餠)이라고도 하는데, 찔 때 솔잎과 같이 찌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솔잎과 함께 찌면 송편에 솔 향이 배어 맛도 좋아지지만 상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까지 있어,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추석에 떡을 상당기간 보관할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의 생활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요리법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추석에 해먹는 송편은 특별하다. 추석 송편은 오려송편이라고 해서 햇곡식으로 만든 떡을, 그 해의 수확에 감사를 드리며 조상의 차례상에 바치던 것이다. 송편은 온달 모양의 동그란 떡에 소를 넣고 붙여서 반달 모양으로 만든다. 그 연유는 반달이 점점 커져 보름달이 되듯이, 모든 일이 잘되고 발전하라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추석은 풍요로운 명절이라 백성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빌었을 정도이다.

올 추석에는 그 의미와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온 가족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정성껏 송편을 빚어보면 어떨까.

글·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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